대학때 한창 만화 일러스트에 빠져서 일본의 사이트에 직접 일러스트 작가들을 검색하는 것이
취미였었다. 그때 알게 되었던 작가가 바로 '이리에 아키'
그의 그림은 내가 꿈꾸던 그런 그림이었다.
만화 일러스트여서 쉽게 표현하면서도 절대 가볍지 않은 동화의 삽화와도 같은 깊이와
상상력 그리고 스킬까지도 모두 갖춘 그림.
적당한 과장과 함께 현실에서 벗어나지 않은 묘사.
이 적당함이란 얼마나 어려운 정도의 영역이던가.
그의 그림에 빠져서 정신없이 다운로드. 그리고 사진으로 뽑아 보관까지-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일개 아마추어 일러스트 작가인줄로만 알았던 그의 그림이
한 권의 책이 되어 서점에 떡하니 비치되어있는것이 아니던가...!
놀라움을 금치 못해 나는 흥분했고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책을 구입했다.
그리고 나는 일부러 기뻐서 주체할 수 없는 마음과는 반대로
이 책에 대한 대단한 기대를
내 마음 속 가장자리로 쭉 밀어 처박아두었다. 바로.
(좋아하는)잘 그려진 삽화에 비례하는 괜찮은 스토리는 거의 '없다'는 것이 인지상정.
하지만 그 만물의 법칙을 무참히 깬 최초의 작품이 '이리에 아키'의 '군청학사'가 아닌가 싶다.
뭐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묘한 분위기의 그의 세계는 나를 단 한방에 사로잡아버렸다!
전혀 다른 이야기들이 한대 묶여 '군청학사'라는 제목으로 나온 이 책은
크게 보면 이레에 아키라는 작가의 철학을 그만의 그림이란 언어로 그만의 캐릭터의 대사로
일관성 있게, 조근조근한 말투로 독자들에게 전한다.
과장해서 말하면 한 편의 문학작품을 읽은 듯한 느낌이다.
그만큼 괜찮은 작품이다.
전혀 다른 세계에서 각각 다른 인물들이 그들의 시간과 공간에서 살아가는 삶을
이야기 한다. 사실 서사적인 전개는 없다. 기승전결이 뚜렷하지 않다는 뜻이다.
평이하고 당연하게 돌아하는 그들만의 현실이란 길다란 시간의 끈이 있다면
잠시 한 사람의 주인공이 발탁되고 그가 겪는 한 사건만을 짝뚝 잘라내어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 단면을 우연히 우리가 목격한 느낌. 하지만 중요한 내면을 들여다 본다.
그 이야기들은 그림의 맛깔스러운 표현력을 가미해 기막한 궁합을 자랑한다.
무슨말이 더 필요하랴
강력한 추천을 하는 바이다.
다른 각도에서 전해지는 잔잔한 삶의 한 단면을
오랫동안 숙성된 이미지의 소소하지만 특별한 맛을 느낄 줄 아는 이들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