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은 치킨이 한국인의 소울푸드가 된 이야기로 흥겹게 시작해
'하림' 같은 대기업이 힘없는 농가를 '등쳐먹는' 서글픈 현실로 끝난다.
우리사회의 '갑질 해먹는 놈들'은 뉴스에만 안 나왔다뿐이지
여기저기 널리고 널렸다.
사실 이 책을 살까말까 고민하다가
본문 앞에 붙은 저자의 말 '책을 내며'를 읽고 뭉클해져 당장 결제했다.
4월 온 국민을 우울과 슬픔의 바다로 몰아넣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진도 팽목항 앞에서 자식의 생환도 아닌 주검 수습을 애타게 기다리며
부모들이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들로 상을 차렸는데
거기에 치킨이 오른 모습을 보고 저자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치킨'을 봤다고 이야기한다.
"축제의 음식인 치킨이 애도의 음식으로 변해버린 그 순간에, '울면서' 후라이드치킨을 써나갔다. 탈고를 한 지금까지도 희생자 수습이 완료되지 않은 데 느꼈던 안타까움을 넘은 분노와 비애 또한 여기에 적어둔다. 후라이드치킨을 통해 한국의 '지금 여기'를 적으려고 했으니, 세상에서 가장 슬픈 치킨을 본 기록도 적어두려는 것이다. 그리고 잊지 않겠다는 결의도 여기에 남긴다."
저자는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걱정하고, 안타까워하고, 분노하며 책을 써나간다.
<1장 치킨은 어떻게 한국인의 소울푸드가 되었나>는 부분은 대단히 흥미롭고 재미있다. 백숙을 먹던 우리가 왜 이제는 백숙보단 치킨을 찾는지, 아빠 월급날, 크리스마스에나 먹던 고급 음식 치킨이 어떻게 퇴근 후에 가볍게 뜯는 일상 음식이며 식사가 되었는지, 또 후라이드치킨-오븐치킨-숯붗구이-불닭-크리스피치킨으로 숨가쁘게 넘어온 치킨의 유행까지 정말이지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두 페이지에 걸쳐 큼지막하게 크리스피치킨과 엠보치킨, 시장표 민무늬치킨을 사진을 실어 세 가지 치킨의 차이를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뭘 이렇게까지..'하며 웃음이 빵 터진다. 하지만 금세 '아 그렇군' 하며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이걸 과연 다음 치맥자리까지 기억해서 아는 척 할 수 있을지는.. 글쎄 ㅋㅋ.
<2장 치킨집 사장으로 산다는 것은> 부터 이 책의 본색(?)이 나온다. 너나나나 할 것 없이 시작하는 치킨집 창업, 사실 그 뒤에는 본사의 횡포에 시달리고 알바생 관리, 고객들의 끝없는 컴플레인, 롯데, 이마트 같은 대기업의 벼룩 간빼먹기식 '통큰' 마케팅 등의 고충 때문에 이래저래 돈만 떼이는 치킨집 사장님들의 고생담을 담았다. 요새 닭한마리가 1만 5천원을 훌쩍 넘는가본데, 롯데마트에서 5천원에 닭을 사먹어본 사람들은 치킨점이 바가지를 씌운다고 욕을 하지만, 실상 개인 치킨점에서 염지 닭 한마리 4500원+한마리당 식용유 1000원선+치킨박스 380원 치킨무 400원+소포장 소스 70원+냅킨 6원+포장박스에 까는 유산지 10원+탄산음료에 쿠폰값+배달값까지 한 마리 튀겨 배달하는 비용이8500-9000원 정도 든다는 놀랄 만한 이야기! 저자의 꼼꼼한 팩트! 거기다 요즘은 배달앱까지 수수료를 받아챙기는 통에 치킨집 사장님들 형편은 더 어렵다고.
<3장 치킨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는 최양락에서 전지현, 소녀시대까지 치킨브랜드 모델의 변천사, 스포츠, 특히 축구, 야구의 인기와 치킨판매율의 상관관계, 그리고 이제는 보통명사가 돼버린 '치맥'의 탄생 과정과 치킨과 뗄 수 없는 콜라의 위탁 생산 기업이 되기 위한 국내기업들의 경쟁까지 드라마 속 여주인공이 무심코 내뱉는 듯한 '치맥' 대사가 치킨업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준다. 언젠가 치킨과 맥주를 같이 먹으면 '통풍'에 걸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 한켠으로는 두렵기도 하지만, 머릿속에 콱 박힌 '치킨엔 맥주'라는 공식이 쉽사리 바뀔 것 같지는 않다.
<4장 대한민국 치킨약전1-백숙에서 치킨까지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닭>에서는 백숙이 어떻게 통닭을 거쳐 후라이드치킨으로까지 넘어왔는지, 치킨의 원조 브랜드 페리카나, 멕시카나, 처갓집양념치킨이 어떻게 KFC에 자리를 내줬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류를 판매할 수 없는 KFC가 대한민국을 휩쓴 치맥 바람에는 끼어들 수 없는 한계 등을 다룬다. 그리고 치킨집에서 '맥주맛'이 얼마나 중요하고, 치킨집에 맥주를 대기 위해 '하이트'와 '카스' 대한민국 양대 맥주회사가 엄청난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이야기가 '독점의 맛, 한국 맥주의 계보학'이라는 제목으로 딸려나온다. 우리나라 맥주야 맛없기로 유명한데, 저자 말대로 '시원한' 맛과 '쏘는'맛으로 먹는 거 아닌가. 더군다나 기름 많은 치킨과 함께라면야.
<5장 대한민국 치킨약전2-산업이 만든 치킨, 치킨이 지탱하는 산업>에서는 치킨업계의 갑을구조에서 우리 노동현실의 암담한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가 가장 잘 아는 육계 브랜드, 치킨집 문앞에서 자주 보는 '하림닭 사용'이라는 문구 뒤에 '믿을 수 있는 대기업'으로 포장된 '을 뜯어먹는 슈퍼갑 대기업'의 추악한 모습을 보여준다. 전국 600여 개 농가와 2,000여 개 협력업체를 거느리고 오리, 돼지고기 시장까지 넘보는 하림이 농가에 온갖 부담을 떠넘기고 자신들 이익만 챙기는 아주 오래된 관행, (나도 생전 처음 듣는 이야긴데) 시인 김수영이 1960년대 10년 간 양계장을 하다 전염병으로 병아리 몇백마리를 한꺼번에 잃고 양계업을 저주받은 직업으로 꼽은 이야기, 보복의 위험을 감수하고 업계의 현실과 대기업의 갑질을 고발한 양계 농민의 인터뷰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개인적으로는 작가가 가장 힘주어 말하는 대목은 마지막 장이 아닐까 싶고, 시작할 때의 흥겨운 이야기와는 사뭇 대조된다. 먹는다는 행위에 대해 생각할 거리도 준다.
"그런데 먹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맛있게 먹고 그걸로 끝인 세상. 그런 세상을 만들면서 우리 또한 맛의 지옥에 갇힌 채 살고 있지는 않은가. 늦은 시간까지 노동을 하고 그 노동의 고통을 치맥으로 달래다 결국 치킨집 사장님의 삶에서 내 미래를 간보고 있는 중이지 않은가. 오늘 한 마리의 치킨과 한 잔의 맥주가 결코 즐겁지만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먹으면 기분 좋아지는 '컴포트 푸드' 치킨에 이렇게 많은 역사와 경쟁과 땀과 분노가 담긴 줄 몰랐다. 재미+정보+이슈를 저자의 꼼꼼한 조사와 글솜씨로 유려하게 풀어 놔 금방 읽었다. 저자 정은정은 대학교에서 농촌사회와 먹거리 산업화 문제를 배우고 가르치는 중이라고 한다. 사실 별 기대 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재미도 있고 생각할 거리도 많아 기분 좋게 덮은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