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hachi4님의 서재
  • 아닌 척해도 오십, 그래도 잘 지내보겠습니다
  • 서미현
  • 16,200원 (10%900)
  • 2024-03-20
  • : 304
아직 오십이 되려면 좀 남긴 했지만,
마흔을 넘은 싱글 독자로서 책을 읽다 보니 얘기치 못하게 오십을 준비하는 마음이 됐다.

그래, 사실 머지 않았다. 간신히 출근하고는 있지만 회사도 언제까지 다닐 수 있을지 모르고, 몸은 언제까지 건강하리라는 보장도 없고,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기댈 남편도 노후에 의지할 자녀도 없다. 은퇴 준비는 시작도 못했다.

“엄마는 투석을 받지 않고 생으로 죽겠다고 떼를 썼고 의사 선생님의 설득과 나의 협박으로 가까스로 동정맥루 수술을 받은 후, 일주일에 3번 투석을 받으러 다니는 투석 환자가 됐다. 나는 집안일을 전담하게 되었다. 할 사람이 없으니까.“ (29쪽)

외동이라 혼자서 팔십 노모의 병수발을 들고 삼시세끼까지 챙겨야 하는 책 저자와 달리, 다행스럽게도 나는 세 명의 남매가 있어 부모님을 챙기는 일을 적절히 나눠 맡고 있다. 다만 집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안 그래도 바쁜 일상이 더 분주해지며 고향집으로 튀어내려갈 마음의 준비를 한다. 함께할 동지들이 있어도 이런데, 그 무거운 책임을 혼자 져야 하는 부담은 어떨까 감히 가늠이 안 된다.
예전에야 부모 부양의 책임이 자연스레 맏아들에게 갔다지만, 요즘은 결혼하지 않은 싱글 딸이 자연스레 그 역할을 맡는 경우가 많아졌다. 혼자인 저자는 역시 선택사항이 없다. 일주일만 누가 엄마를 좀 봐줬으면 좋겠다는 절절한 진심과 고됨이 종이를 뚫고 나왔다.

저자는 사십대 후반에 다니던 광고회사를 그만두면서 다소 일찍 직장 생활을 정리하고 은퇴를 했지만, 곧장 돌봄 노동이라는 어쩌면 더 고된 세계로 속절없이 휩쓸려 들어왔다. 병든 노모를 돌보며 살림을 하느라 멈춰 있는 시간 동안 주변 친구들은 하나둘 이름을 알리고 성공을 거두고 눈코뜰새 없이 바삐 살아간다. 친구가 잘 돼서 좋지만 샘도 나고 속도 상한다. 나도 프리랜서 생활을 오래 했던지라 이 마음 너무 잘 안다. 나도 분명 남들만큼, 어쩌면 더 열심히 사는데 어쩐지 떳떳지 못하고 주눅드는 기분.
세계에 속하지 못하는 기분이 자주 들었다.

“음식 준비가 손에는 붙었으나 큰일은 역시 혼자 해내지
못한다. 김치 담그기나 만두 만들기는 엄마가 투석을
받지 않는 날 합동작전을 펼치는데, 매번 같이 할 때마다 그냥 사 먹자고 꼬드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함께 만드는 시간이 오래 이어지길 바라기도 한다.” (35쪽)

얘기치 않게 맡게 된 살림과 삼시세끼를 차리는 일, 나이들고 아픈 엄마를 챙기다가 어느새 나의 늙어감도 확인하는 일, 사람들의 악의없는 무례에 대한 생각, 그럼에도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소중한 루틴, 언제나 곁을 지켜주는 소중한 친구들, 현재를 살게 하는 지나간 여행의 기억들....

“노트북을 켜고 삭제했던 네이트온을 다시 깔았다. 네이트온에 들어가 두 작가에게 인사를 건넨다. 오늘도 작업 열심히 하라고,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고, 함께하는 시간이 존재한다고. 그 방이 있어 우리는 연결되어 있고, ‘오늘도 잘하자’를 외쳐줄 수 있는 공간과 사람이 있다고 알려주고 싶었다.” (131쪽)

어느 대목에선 낄낄 웃다가 어느 대목에선 가슴이 답답해 한숨을 내쉬다가 또 어느 페이지에선 나는 어떤가 멈춰 생각하기도 했다. 가족의 갑작스러운 투병, 사고, 상실로 힘들어하는 친구에게 내가 혹시 경솔하고 일방적인 배려로 상처를 주진 않았을까, 기도하겠다는 공허한 말 말고 내가 해준 게 있나 되짚어봤다.

혼자인 게 편한 것 같다가도 나중에 진짜 아무도 없이 혼자이면 어쩌나 막막하기도 하다. 그런 막연한 불안이 불쑥불쑥 올라오는 나이에, 이 책은 무심하고 시니컬한 척 따뜻한 응원을 건넨다. 오십, 뭐 괜찮다고, 같이 한번 잘 건너보자고.

저자에게 응원받은 것처럼 나도 저자를 응원하고 싶다. 괜찮다고, 주변에 조용히 응원하고 진심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을 거라고. 오십을 앞두고 막막한 불안감이 드는 분들, 또 준비없이 오십을 맞아버린 분들이 읽으면 좋을 책 같다. 우리 다 너무 걱정하지 말자!

가볍게 술술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 동시에 내가 현재 서 있는 위치와 나이, 무엇보다 앞으로 올 오십의 삶을 맞이할 ’태도‘에 대해 가만히 생각해볼 수 있게 한다. 주변에 오십을 앞둔 친구들에게 슬그머니 선물하고 싶다.

“혼자 나이 드는 걸 두려워하지만 때로는 다 같이 잘 늙어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미래의 삶을 엄청나게 걱정하지는 않는다. ‘나만 나이드는 것도 아닌데 뭘~’이라는 대책 없이 쿨한 정신으로 나아갈 뿐.” (284쪽)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