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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stbone님의 서재
  • 최후의 유혹 - 상
  • 니코스 카잔차키스
  • 14,220원 (10%↓790)
  • 2010-01-20
  • : 2,182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최후의 유혹>은 이전에 읽은 주제 사라마구의 <예수복음>과 공통점이 있는 책이다. 둘 다 예수의 생애를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한 소설이라는 점이 첫번째 공통점이고, 두번째는 내가 두 작가의 대표작을 읽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어봐야겠다고 마음 먹은 게 근 이십년이 되어 가듯이,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언젠가는 읽어야겠지’라고 마음 한 켠에 담아둔 것도 십수년이다. <최후의 유혹> 상권을 펼치고 몇 페이지 읽지 않아 그런 마음이 들었다. ‘이젠 <그리스인 조르바>를 진짜 읽어야겠구나.’

강렬하다. 이보다 더 강렬한 이미지의 소설을 읽어본 게 얼마나 되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문장 만이 아니라 소설의 인물, 설정, 구도 모든 것이 그러하다. 이 소설 속의 예수는 유대인들이 저주를 퍼붓고 경멸해 마지 않는, 십자가를 만드는 사람이다. 로마에 저항하는 열심당원을 처형할 때 쓰는 십자가를 만들어 로마군에게 납품하는 목수. 그는 유대 민족을 배신하고 일신의 영달을 위해 십자가를 만드는 게 아니다. 신이 내린 격렬한 두통과 신열, 환상에 시달리는 그는 메시아로서의 운명을 거부하기 위해, 신이 자신을 혐오하여 다른 사람을 메시아로 세우길 바라는 마음에, 신을 떨쳐버리고 싶은 마음에 그 흉악한 십자가를 만들게 된 것이었다.

한편 열심당의 일원, 붉은 머리의 대장장이 유다는 예수를 겁쟁이 배신자로 여긴다. 예수가 구원을 찾아 떠난 사막의 수도원에서 유다는 민족의 배신자 예수를 처단하려 한다. 하지만 목숨에 초연한 듯한 예수의 태도에 유다는 차마 그를 죽이지 못하고, 마침내 예수는 일어나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이야기를 말하려는 결심을 세운다. 하지만 그가 하려는 말은 유대민족이 원하던 것, ‘로마인을 몰아내자’라든가 ‘주님 앞에 회개하라’는 말이 아니었다. 그가 사람들을 모아 놓고 한 말, 창녀 막달라 마리아를 구하면서 한 말은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었다. 로마의 지배 아래에서 신음하던 유대인들이 로마인도 사랑할 수 있겠는가? 세례자 요한이 ‘인간은 쓸모없는 존재이고 나는 불이니라. 나는 이 땅을 깨끗이 하고, 영혼을 태워 깨끗이 해서 메시아가 오시게 하려고 왔노라’고 외친 것이 당시 유대 민족의 일반적인 정서였다. 인간을 물과 불로 심판하던 신이 아들의 입을 빌려 ‘사랑’을 말하면 순순히 받아들일 준비가 된 이가 몇 명이나 될까?

어부 베드로, 수도사 요한, 제베대오 영감의 아들 야고보, 세례자 요한의 제자 안드레아, 양치기 필립보, 도붓장수 토마, 그리고 붉은 머리 유다까지. 예수는 제자들을 거느리고 세례자 요한을 만나러 간다. 사마리아 땅을 건너 예루살렘을 지나면서, 마주치는 이들에게 사랑을 설파하면서, 기적을 행하면서. 세례자 요한은 예수에게 요르단 강물로 세례를 행하고 썩은 나무는 도끼를 들어 쳐야지 사랑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설파한다. 진정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던 예수는 사막으로 가 신의 목소리를 들으려 한다. 언저리에 숨어 교묘히 유혹하는 사탄의 목소리를 경계하면서. 사막에서 보낸 며칠 간의 밤. 사탄은 뱀의 모습으로 화해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와 혼인하여 평범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유혹한다. 아내를 얻고, 아이들을 낳고, 목수로서 쟁기와 구유와 요람을 만드는 삶. 하지만 신은 예수에게 그런 삶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유대인의 왕이 되는 건 어떤가? 이번에 예수 앞에 나타난 건 사자였다. 사자는 예수에게 유대 민족을 이끌고 바빌론과 예루살렘과 알렉산드리아와 로마를 네 발로 짓밟고 돌아다니는 사나운 왕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신은 그것도 허락하지 않는다. 그 날이, 종말의 날이 가까이 다가왔는데 세상의 왕국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신의 왕좌에 앉아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는 자리를 차지하는 건 어떤가? 사탄은 이번엔 대천사 가브리엘의 형상을 하고 예수를 유혹한다. 예수는 하느님의 하나뿐인 아들로서의 운명을 받아들이려 하나, 이 또한 사탄의 조롱이었을 뿐이다. 세 번의 유혹을 견딘 예수에게 마침내 신은 자비로운 명령을 내린다. “일어나거라, 주님의 날이 임하리니. 달려가서 사람들에게 말을 전하라, 내가 간다고!”

이토록 현학적이면서 에너지로 가득찬 소설이라니. 영롱히 빛나는 문장이 만드는 격렬한 소용돌이의 한복판에서 나는 더할 나위 없는 환희와 황홀을 느꼈다. 신을 믿든 믿지 않든, 이 책을 읽는 것은 그 자체로 인간 의식의 본질을 탐구하는 행위이다. “악마들이 우글거린다는 지옥이란 땅 밑 굉장히 깊은 곳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 속에, 가장 덕망이 높은 사람들, 가장 의로운 사람들의 마음 속에 존재한다”는 문장이 그 예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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