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리뷰] 농담
지하철 독서가 2026/03/13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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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담
- 밀란 쿤데라
- 12,600원 (10%↓
700) - 1999-03-20
: 14,156
장난스럽게 던진 한 마디 농담이 개인의 삶을 처절하게 파괴한다.
주인공 루드비크는 가볍고 성마른 기질을 가진 대학생이었다. 방학 내내 당 교육 연수를 떠난 고지식한 여자 친구 마르케타에 대한 그리움에 지쳐, 그녀에게 보내는 엽서에 이런 농담을 적은 게 그의 인생을 망가뜨려 버렸다. “낙관주의는 인류의 아편이다! 건전한 정신은 어리석음의 악취를 풍긴다. 트로츠키 만세! 루드비크.” 마르케타는 농담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대학의 당 사무국에 이 엽서를 신고한다. 개학 후 당 사무국에 호출된 루드비크는 호된 심문과 비난을 받는다. 너는 낙관주의 없이 사회주의 건설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마르크스는 종교를 인류의 아편이라고 했는데, 너같은 트로츠키주의자에게 건설적 낙관주의는 아편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지? 루드비크는 자기가 한 말이 그저 농담에 지나지 않는다고 변명하지만, 그럴수록 간부들에게 말꼬리를 잡혀 궁지에 몰린다. 다른 건 몰라도 트로츠키를 언급한 건 스탈린주의가 만연했던 당시 1948년엔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이었을 터다. 루드비크는 친구였던 조직의 위원장 제마네크에게 한 가닥 희망을 걸었으나, 제마네크는 그를 배신하고 루드비크를 당에서 축출하며 대학에서도 쫓아낸다는 엄혹한 처분을 내린다. 대학생 신분을 잃은 루드비크는 낯설고 먼 탄광부대로 배속된다.
사실상의 수용소로 끌려간 그는 자신이 처한 비참한 현실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러던 와중, 혼자서 외출을 나갔다 극장에서 루치에라는 여자를 만나고 그녀가 풍기는 우울과 쓸쓸함에 매혹된다. 그녀를 사랑하게 된 루드비크는 더 이상 비탄의 구렁텅이에서 헤매지 않게 된다. 그는 루치에를 통해 구원받기를 원하나, 루치에는 루드비크의 부담스러운 구애를 견디지 못하고 관계는 파국에 이른다. 세월이 흘러 마침내 루드비크는 탄광부대에서 제대하고 우여곡절 끝에 한 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재직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헬레나라는 라디오 방송국 기자가 연구소에 대한 취재 차 인터뷰를 청하고, 루드비크는 헬레나와 대화하다 그녀가 자신의 삶을 파멸로 몰아넣었던 친구 제마네크의 부인임을 알게 된다.
이 기막힌 우연 앞에서 루드비크는 헬레나를 정복함으로써 제마네크에게 처절한 패배감을 안기겠다는 복수를 꿈꾼다. 시간과 정성을 들여 헬레나를 유혹한 끝에, 그의 고향 마을 모라비아의 축제에 헬레나를 초대한 루드비크는 과연 이 복수를 성공적으로 끝마칠 수 있을까?
교조화된 이데올로기는 극단적인 폭력성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소련의 대숙청이나 중국의 문화대혁명이 바로 머리에 떠오르지만 비단 공산주의만 그런 게 아니다. 당장 ‘윤어게인’으로 대표되는 극우들이 보여주는 행태만 봐도 충분하지 않은가. 이 소설의 시발점은 이데올로기가 개인에게 가하는 폭력이지만, 그 길고도 험난한 세월을 지나 주인공이 맞닥뜨린 건 지독한 농담 같은 결말이었다. 내내 11월의 헐벗은 나무 같던 스산한 이 소설의 끝은 그래서 더 씁쓸하다. 밀란 쿤데라는 상술한 줄거리 외에도 여타 등장인물 - 야로슬라프, 코스트카 - 의 시선을 빌려 폭압적인 체제에 의해, 급변하는 시대에 의해, 신념과 욕망의 괴리에 의해 고통받는 군상들을 보여준다.
농담으로 인해 나락으로 떨어진 루드비크가 진심으로 복수를 꾀했지만 그 결말이 한 편의 소극(笑劇)이 되어버린 걸 보면, 우리네 삶은 진지한 코미디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망각에 의한 풍화가 일생의 복수조차 결국엔 농담으로 만들어 버리는 아이러니가 곧 인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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