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리뷰] 미국 공산주의라는 로맨스
지하철 독서가 2026/02/01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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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공산주의라는 로맨스
- 비비언 고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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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0) - 2024-11-11
: 2,511
좀체 믿기지 않겠지만 미국에도 공산당이 있었다. 아니, 지금도 있다. 그저 존재한다는 정도에 그치는 게 아니었다. 1920~30년대 미국 공산당은 미국 내 노동운동과 사회 변혁의 주체였다. 열악한 환경에 놓인 노동자들을 조직화하고, 억압받고 차별받는 약자들을 보호하고, 좀 더 진보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살면서 한 번이라도 공산당에 가입한 적이 있는 미국인이 100만명이 넘는다는 사실은 자본주의에 저항하고자 하는 미국 시민들의 열망이 엄청났다는 걸 증명한다. 그들 중 수천 명의 공산당원들은 사회적 고립과 경제적 궁핍은 물론이고 수배와 재판, 투옥까지도 감내했던 열성당원들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자본주의 세계의 중심이었던 미국에서 이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공산당 활동을 한 것일까.
비비언 고닉이 이 책을 낸 시점은 1977년이었다, 스탈린이 죽고 뒤를 이은 흐루쇼프가 1956년 소련공산당 제20차 당대회에서 스탈린이 저질렀던 잔혹한 대숙청과 학살을 폭로하면서 전세계에 어마어마한 충격을 주었다. 안 그래도 2차대전 이후 미국을 휩쓴 매카시즘 광풍으로 인해 상당히 세가 꺾였던 미국공산당은 이 사건으로 인해 그야말로 붕괴되었다. 당의 중추를 이룬 핵심당원들이 줄줄이 당에서 탈퇴하면서 당을 이끌어갈 동력 자체를 상실했기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후, 비비언 고닉은 당시 공산당을 위해 기꺼이 청춘을 바쳤던 이들을 미 전역을 돌며 찾아가 인터뷰를 하고 글로 엮어 이 책을 낸다.
비비언 고닉은 이 책의 서두에서 이런 질문을 던진다.
“이 미국 공산주의자들은 정확히 누구인가? 미국공산당을 통해 마르크스주의 이상에 복무하는 데 인생의 대부분을 바친 이들은 어떤 미국에 뿌리를 두고 있나? 이들은 정확히 어디서 왔나? 만일 실제로 그러하다면 이들은 미국 대륛에서 어떤 삶의 귀퉁이를 대변하는가? 시간, 장소, 사상과 조우하는 불꽃놀이 같은 순간에 감응하고 공산주의에 발을 담금으로써 열정을 품은 존재로 변신할 채비가 된 모든 인간 내부에 살아 있는 그 잠든 허기에 말을 건 것은 미국의 삶 중에서도 어떤 구체적인 조건들이었나?”
반공의 시대를 살아온 이들에게 공산주의자의 이미지는 악마 그 자체였다. 미국 공산주의의 전성기를 경험하지 못했던 고닉의 동세대에게도 미국공산당원들은 극악무도한 ‘바다 건너에서 온’ 악마들이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고닉이 만난 이들의 인종과 성격, 직업은 다양하지만, 딱 한 가지 그들 모두에게서 드러나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인생 어느 때도 겪어 보지 못한 희열에 가득 차서 공산당 활동을 했다는 것이다. 공산당이 그들에게 불어넣은 열정이 너무나 커서 이 당원들은 보장된 미래와 재산은 물론, 가족까지도 헌신짝처럼 버리고 당 활동에 매진했다. 어떤 계기로든 공산주의를 접한 이들은 대오각성한 듯 항상 고양된 상태여서 어떤 어려움도 기꺼이 견딜 수 있었다.
1940년대까지만 해도 이들은 마치 예수 재림을 기다리듯 혁명이 임박했다고 믿었다. 하지만 예수 재림은 현실이 아닌 종교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당장 일어나지 않더라도 그저 믿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마르크스가 말한 혁명의 조건이 무르익었는데도 미국 땅에서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보고 이들 마음 속에는 조금씩 의심이 싹트기 시작한다. 그리고 남녀 간의 사랑이 식듯, 공산주의에 대한 그들의 열정은 서서히 때로는 급작스럽게 사그러들었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미국 공산주의라는 로맨스>가 아닐까 싶다.
중앙당(소련공산당)에 대한 무비판적인 복종, 툭하면 벌어지는 야만적인 당원 비판과 축출, 이데올로기에 매몰된 비인간적 행태. 이 모든 것들이 이들을 로맨스에서 깨어나게끔 한 요인들이었다. 당을 떠난 이들은 여전히 공산주의자로 남아 있거나, 페미니즘으로 경도되거나, 사회주의자(수정주의라고 비판받는)가 되거나, 극렬한 반공주의자가 되었다. 이들 중 한 명은 자신이 몸담았던 공산당 활동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나한테 그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삶이었지. 난 공산당원으로서 우리 시대의 심장부를 겪었던 것 같아. 인류의 가장 문제적인 감각이 20세기 공산주의의 역사 안에 체현되어 있다고. 우리 시대에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와 가장 치열하게 씨름할 수 있는 방법은 공산주의자가 되는거 였소. 4백 년 전에는 기독교 교리와 교회 정치를 통하는 거였지만 우리 시대에는 단연 마르크스주의와 공산당이었지. 내 생각에는 지금도 그렇고.”
즉 이들은 시대를 관통하는 사명감을 갖고 세상을 변혁하는 수단으로 공산당을 골랐던 것이었다. 이는 미국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그 시대에 사회가 맞닥뜨린 문제를 극복하고 해결하겠다는 이들의 강렬한 감정의 분출이고 폭발이었다. 이와 동일한 맥락에서 우리는 지난 2년 간 내란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보여준 헌신과 꺾이지 않는 의지에 지극한 감동을 느낀다. 시대가 지나고 세대를 건너도, 변혁을 향한 우리의 로맨스는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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