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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마님님의 서재
  • 글자들의 수프
  • 정상원
  • 13,950원 (10%770)
  • 2024-07-31
  • : 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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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섬 제주의 이면에는 비극적인 광란의 현대사가 공존한다. 지금도 제주도의 제삿날에는 메그릇만 올려도 상이 꽉찬다. 한날한시에 일가족이 몰살된 경우가 허다하므로 일가친척의 제삿날이 같은 까닭이다. 4.3이라는 근현대사 최대의 비극은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흔적이 되어 한라산을 두려움의 공간으로 물들인다. "덜 서러워야 눈물이 난다고 했다. 아니, 덜 무서워야 운다고 했다. 사실 그들은 무서움이 사무쳐서 못 울었던 것이다." 그의 문장에서 아픔이 묻어난다. 제주도 인구의 1할을 한번에 앗아간 민간인 학살은 제대로 익지도 않은 거친 이데올로기와 함께 순박한 섬사람들에게 몰아닥쳤다. 그래서 당시 제주 이야기를 올곧이 담은 <지상에 숟가락 하나>는 슬픔과 미안함 사이에서 살아온 생존자가 억울한 주검에 바치는 조사이기도 하다. 운좋게 살아남은 생존자가 고투로 쓴 글의 행간은 과가 없는 사과와 죄가 없는 사죄로 가득 차 있다. 4.3의 진실을 다룬 오열 감독의 영화 <지슬>이 서사의 객관성으로 눈을 뜨게 하고, 4.3의 아픔을 담은 소설가 한강의 책 <작별하지 않는다>가 서정적 담담함으로 마음의 문을 두드린다면, <지상에 숟가락 하나>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솔직하게 고백해 독자를 그 시간, 그 장소로 데려간다.

- 정상원 "글자들의 수프"(사계절, 2024) -

* 유명한 쉐프님이 쓰신 글이라 하나 맛있는 음식 레시피나 얻을 수 있겠다 싶어 읽기 시작했다.(이런 단순하고 가벼운 사람이 바로 나;;) 그런데 첫 장부터 제주의 이야기가 나왔다. 죽음, 젯밥, 4.3. 갈수록 심오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허투루 쓰여진 게 없었다. 마치 고급 레스토랑에 가면(자주 가본 적 없지만) 플레이트에 대충 그려놓은 듯한 소스의 모양과 굵기, 음료에 뛰어논 작은 풀떼기(실은 엄청난 향미를 가진) 조차도 화룡점정처럼 작품을 완성하는 것처럼.

다 읽고 나니 배가 부르다.(정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먹방 유튜브를 보는 것인가?!)
단어 하나가 마치 음식의 재료인 것처럼 문장을 구사해내는 쉐프님의 책이라니.
왜 제목이 글자들의 수프인지, 표지그림이 글자들로 수프를 만드는 것인지 확실히 알았다.
요즘 다이어트하느라 간소한 음식들로 삶을 채우고 있었는데,
몸과 마음이 허기질 때마다 부엌 한 켠에 꽂아놓고 읽고 싶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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