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바라문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여유롭게 지내던 싯다르타는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친구 고빈다와 함께 마을에 들어온 사문을 따라 출가한다. 그러나 열반에 이른 고타마가 나타나자 그에게서 배우기 위해 기원정사에 들어간다. 남겠다는 고빈다를 두고, 싯다르타는 스스로 경험하지 않고서는 그처럼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세속으로 들어간다. 아름다운 유녀 카말라에게서 사랑을 배우고, 부유한 상인 카와스와미에게서 장사를 배운다. 40세가 되자 문득 헛된 것임을 깨닫고 다시 떠난다. 뱃사공 바스데바로와 강의 소리에 귀기울이며 살던 어느날, 싯다르타는 어린 아들과 재회하지만, 아들은 돈을 가지고 떠나버린다.
싯다르타가 깨닫고자 한 것은 세상의 본질이 무엇인지다. 세상의 본질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있으므로 이를 깨닫기 위해 명상, 단식, 기다림을 수행하지만 깨닫지 못한다. 이미 깨달음을 얻었다는 고타마로부터 사성제와 팔정도의 지혜를 배우지만, 가르침을 통해 배우는 것이 아니라 직접 경험을 통해 깨달을 수 있다는 생각에 속세로 들어간다. 다시 속세를 벗어나면서 강의 뱃사공으로 일하며 싯다르타는 세상의 본질은 사물 너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물속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강에는 현재만 있을 뿐 과거나 미래의 그림자가 없다(141)'고 하면서, 만물은 그 본질과 함께 오직 현재에 살아있을 뿐(141)이라고 깨닫는다.
머물렀다 떠나고 다시 머물렀다 떠나는 싯다르타는 진리를 찾기 위해 평생을 방황한다. 지식을 쌓는 것이 다가 아님을 알고, 이미 깨달은 자로부터 말씀을 듣는 것도 옳은 길이 아니고, 직접 세상속으로 들어가 겪어보고 평범한 뱃사공으로부터 강의 속성에 대해 깨닫게 되면서 깨달음을 완성한다. 경험하지 않고 구도만 했던 친구 고빈다가 끝내 진정한 깨달음을 얻지 못한 것과 대조적이다. 싯다르타는 자기가 만난 모든 사람들이 스승이었고, 그들로 부터 많은 것을 배웠고, 강에서 특히 많은 것을 배웠다고 고백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책을 읽다보면, '어린 아이와 같은 사람'이 다양한 의미로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희로애락하며 사는 평범한 사람을 의미하기도 하고, 사문으로 들어갔을 때는 속세 사람들을 낮추어 부르는 말로도 쓰이고, 사상과 이성이 아니라 충동과 욕망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의미하기도 한다. 해탈하지 않은 모든 일반 사람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싯다르타 자신은 평범한 사람들과 거리를 두면서 이 표현을 썼는데, 자살을 시도했다 실패하면서 강가에 쓰러져 속세에서 흥청망청 살았던 과거의 자신을 버리고, 어린아이로 태어났다고 표현하는데, 이것이 깨달음의 시작이다.
굉장히 사색적이다. 싯다르타가 찾아 헤매는 진리를 찾아 함께 고뇌하면서 읽게된다. 저변에 흐르는 사상은 불교지만,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자신이 누구인지를 찾아 함께 고민하기에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