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노간주 나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찾아보니 그림형제의 잔혹동화 중 하나이다. 새 엄마가 전처의 아들을 죽여 남편에게 먹이고, 여동생이 오빠의 뼈를 모아 노간주 나무 아래 묻었더니 새가 되었다. 새엄마에게 돌저구를 떨어뜨려 죽이고, 다시 살아난 아들은 아버지와 여동생과 행복하게 살았다는 내용이다. 섬짓한 동화를 제목으로 삼은 이 책은 어떤 내용일지 궁금하다.
도피성 수면장애가 있는 영주는 꿈을 꾼다. 새가 되려고 높은 나무에서 떨어지는 꿈, 엄마가 계단에서 미는 바람에 추락하는 꿈, 다지증 아기를 받으며 실수하는 꿈처럼 모두 악몽이다. 꿈과 현실을 구분하기 어려워하고, 경계가 약해 타인의 경험도 내 경험처럼 느낀다. 어려서 의사인 아빠가 죽자 엄마는 집을 나가고, 고모집에서 눈치밥을 먹으며 자랐다. 어른이 되어 산부인과 간호사가 되었고, 전남편과 이혼하며 지우려했던 아들을 낳아 키운다. 6살이 된 아이를 위해 임용고사를 준비하지만 힘에 겨워 자기를 버린 친정엄마를 찾는다.
서형사는 강력계에서 두 건의 아동학대 사건의 공통점을 발견한다. 아이를 죽인 엄마들이 누군가로부터 갈색병을 받아 아이에게 먹였다고 주장한다. 갈색병의 약은 노간주 열매에서 뽑아낸 것으로 '다시 태어나게 해준다'며 불면치료에 좋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갈색병을 준 여인에 접근하는데 과거의 인연 속에 있는 뜻밖의 인물의 등장에 놀란다.
이야기는 주로 세 명의 주인공인 영주와 아들 그리고 친정엄마의 이야기에 집중되어 있다. 엄마는 의사인 아빠가 죽자 집을 나갔고, 세신사, 약초 도매, 피부미용, 산파와 같이 다양한 일을 하며 사람들에게 위로와 치료를 하며 살아왔다. 영주는 고모의 집에서 크며 엄마를 원망하지만 꿈과 현실을구별하지 못하고 예지몽이나 태몽으로 사람들의 미래를 안다. 영주의아들 선호는 가학적인 행동으로 어린이집에서 쫓겨난다. 병원놀이를 하며 치마를 들추고, 새를 죽이고, 미끄럼틀에서 남자애를 밀어버리는 등 사이코패스같은 행동을 보인다. 세 인물 모두 정상인과는 조금 다르다.
스릴과 미스터리 요소가 스며있다. 과연 갈색병을 준 사람이 누구인지, 왜 이 세 명의 인물은 이렇게 비정상적인 행동을 보이는지에 대해 풀어간다. 어릴 적 살았던 큰 노간주 나무가 있는 집에 세 인물이 모이면서 불안불한한 모습이 그려진다. 꿈에서 자신을 계단에서 밀어버린 엄마를 믿지 못하는 영주는 엄마를 여전히 불신한다. 사이코패스 성향을 보이는 아들은 계단의 못에 영주가 다치도록 의도한다. 노간주 열매에서 추출한 약과 자장가로 영주를 잠들게 하는 엄마의 행동은 뭔가 큰 비밀을 숨기고 있어 더 공포스럽다.
그림형제 동화만큼 비극적인 가족 이야기다. 이야기의 끝에서 영주의 모든 꿈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밝혀지며 으스스함이 풀리고 슬픔이 밀려온다. 영주의 도피성수면장애가 어릴 적 트라우마로 인한 것이고, 서형사와 연결된 영주의 과거 이야기도 밝혀진다. 아동학대가 한 인간의 삶을 얼마나 무너뜨릴 수 있는지 보여준다.
등장인물들이 살아있는 것처럼 실감나게 구현하고 있어서 긴장하며 읽게 되는 소설이다. 추리소설같지만 범인을 찾기보다 영주라는 인물의 과거에서 비롯된 현 상황을 설명하는 이야기이다. 뜻밖의 결말에 마음이 무거워지지만 어디선가 자행될 아동학대에 경종을 울리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