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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황후님의 서재

나는 가족 내에서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 내가해야 한다는 사실을 머리로도 몸으로도 너무나 잘 아는 어른 같은 아이로 자라났다. 나를 따라다니던 ‘어른 같은’, ‘철이 빨리든‘ 등 여러 수식어가 나의 어깨를 으쓱하게 만들어주었지만 때로는 그 역할이 버겁게 느껴졌다. (p.33)
부모님을 따라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의 계약이 끝나면 어디 이사를 가야 할지, 새집에 들여놓을 가구는 어느 것이 좋은지 등을 통역하다 보면 어느새 나도 부모님과 함께 그 문제를 고민하고 있었다. 조금 더 커서는 진로에 대한 고민도 더해졌다. 어느 학원을 다녀야 하는지, 어느 학교를 가야 하는지, 나중에 커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지금 어떠한 준비를 해야 하는지. 내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여러 선택지를 앞에 놓고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조금씩 무기력해졌다. 엄연히 부모님이 계시지만 가장 아닌 가장 같은 역할을 해야 했던 어린 나는 혼란스러웠다. 너무 큰 문제인데도 내 뜻대로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있는가 하면 작은 문제이지만 통제당하고 혼자 결정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었다. 그 안에서 나는 내가 어른인지, 아이인지를 수 없이 되물었다. (p.34)
사실 수어 통역사를 부를 수 있더라도 통역은 어떤 특별한 이벤트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일상 전반에 필요한 것이다. 농인에게는 텔레비전을 볼 때도, 밥을 먹을 때도, 길을 걷다가도 통역사가 필요한 순간들이 생긴다. 하지만 수어 통역사를 매일, 매순 간 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삶의 많은 문제들은 연속성을 띠기에 자신의 역사를 모르는 통역사와 처음 동행하게 되면 아무래도 의사소통의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또한 통역을 의뢰하면 삶의 내밀한 부분까지 보여주어야 하므로 농인들은 때로 통역사 앞에서 발가벗겨진 기분을 느낄 때가 있다. (p.38)
우리 부모님은 수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고 수어는 완전한 자격을 갖춘 또 하나의 언어였다. 하지만 사회는 농인과 함께 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그 속에서 농인은 열등한 존재로 취급되며 사회 안전망 바깥으로 밀려나 있었다. 농인에게 가난은 그렇게 주어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영상은 농인이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해‘ 가난하게 사는 것이라 말하고있었다. 나는 그런 생각에 동의할 수 없었다. (p.54)
농문화 안에서 ‘농‘은 지극히 정상적인상태였고 한국수어‘는 공기처럼 존재했다. 그들과 함께한 시간은 소리가 들리지 않음‘이 신체적 상태라는 것을 알게 했다. 소리가 들림‘과 ‘소리가 들리지 않음은 둘 다 상태와 경험일 뿐이며 가치 체계의 개입은 그다음 단계에서 일어나는 일이었다. 또 한 그 경험에 결함‘이라는 가치 판단을 부여한 것은 농인과 농사회가 아니었다. 예컨대 ‘소리가 들리지 않는’ 상태에 대한 공포는 청인들이 만들어낸 신념일 뿐 농인들은 그 상태를 공포로 경험하지 않았다. (p.55)
그런 불편한 순간은 종종 있었다. 언젠가 한 통역사에게서 내 귀를 의심할 만한 말을 들었다. 코다들이 하는 특정 행동이 있는데 자신은 이를 ‘코다 짓‘이라고 부른다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나에게 ‘코다 짓을 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그때만큼은 속에서 울컥 올라오는 무언가를 누르기 어려웠지만 몇 초의 침묵 끝에 결국 착한 후배가 되는 길을 택했다. 나는 코다를 향한 여러 비판에 상당히 길들여져 있었다. (p.62)
모두 나를 위한 말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어떤 잘못을 했거나 길을 잃었을 때, 도움이 필요할 때 조언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나로 존재하는 순간에, 그러니까 내가 코다로 있는 순간에 그런 말을 던지고 사라졌다. 하지만 그 말들의 여운이 길었던 이유는 사실 그 말이 이미 나를 그런 부류로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농사회에 더 깊이 들어갈수록 괴로움이 내 마음 한자리에 무겁게 자리 잡았다. 그 괴로움은 내가 무방비 상태일 때불현듯 튀어나와 종일 내 마음을 어지럽혔다. (p.62)
농인과 청인은 같은 지리적 공간에서 공통된 문화를 기반으로삼고 있다. 그러나 각각은 그들만의 고유한 문화를 지니고 있다.
두 문화가 얼마나 다른지 가늠할 수는 없지만 시각에 기반한 사고와 소리에 기반한 사고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청인들은 내리는 눈을 보며 ‘눈이 온다‘고 하지만 농인들은 ‘눈이 있다‘고 표현하여 어떤 상태나 상황을 존재 여부로 나타내는데 이것은 사건의 시각적 해석을 반영한다. 비단 언어의 사용만 다른 게 아니다. 크고 작은 사건들을 해석하는 데도 농인과 청인의 관점은 다를때가 많다. 농인과 청인이 함께 있는 곳에서는 이런 해석의 차이 로 인해 갈등이 발생하곤 한다. (p.63)
통역이란 본래 말을 바꿔 전하는 것이다. 한국어를 그대로 한국수어 단어로만 바꾸거나 혹은 그 반대로만 하면 말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는다.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잘 바꾸더라도 그 맥락과 문화적 차이를 고려하지 않으면 역시 엉뚱한 통역이 되어버리고 만다. 나는 자라며 문화적 차이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게되어 통역을 할 때 화자가 말하지 않았더라도 혹시 생길 수 있는오해를 만들지 않으려고 필요한 설명을 더하곤 했다. 사실 의미를 백 퍼센트 정확히 전달하는 통역은 불가능하기에 통역사들은 적당한 표현이 없다면 다른 표현으로 대체하거나 원문보다 길게 혹은 짧게 설명하는 등 다양한 기술을 사용한다. (p.65)
한국 사회의 ‘단일 민족‘이라는 정체성은 하나의 언어와 하나의 문화를 바탕으로 삼아야 가능하다. 그러다 보니 이 사회에서 나와 다른 사람은 틀린 사람으로 취급되고, 그 범주에 장애인도 포함됐다. 농인은 농사회 안에서는 장애인이 아니지만 청인 사회 와 만나는 순간 장애인이 된다. 결국 다양성이 공존하지 않는 우 리 사회의 주류에서 밀려난 농인은 취약층이 된다. 대물림되는가난과 농인 가족에게 쏟아지는 부정적인 시선들 속에서 코다가 코다로서 서 있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런 코다를 보듬기 위해 농부모가 갖고 있는 자원은 전무하다. (p.84)
"그럼 (맛이) 쓰다‘라는 의미의 수어는 없어? 어떻게 대화를해? ‘쓰다‘라는 수어 단어를 따로 만들면 되지 않아?"
이 질문은 나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영어, 중국어 같은 음성언어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 언어에 특정 개념을 나타내는 어휘가 없다거나 달리 표현된다는 설명은 쉽게 받아들이지만 한국어와 같은 땅 위에 존재하는 한국수어를 말할때는 조금 다른 태도를 취한다. 한국어에 대응하는 한국수어가없다면 만들어야 한다고, 한국수어는 한국어와 같아져야 한다고 말한다.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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