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에 5.000만 킬로미터. 빛이 이 거리를 달리는 데에는 167초가 걸리지만 내가 책장을 넘기는 데에는 그보다 훨씬 적은 시간이 걸린다. "천천히 책장을 넘겨도 빛보다 빠르게 태양계 마을을 여행할 수 있다"는 작가의 말이 인상깊다. 빈 공간이 너무 많을까 우려했지만 여행이 지루하지 않도록 중간중간 작가의 안내말이 적혀있다. 행성들에 대한 설명 뿐 아니라 보이저 우주선의 탐사를 가능케 해준 스윙바이, 지금 태양계의 모습을 설명해주는 열쇳말인 동결선 등에 대한 설명까지 의외로 많은 내용이 담겨 있어 놀랐다. 때문에 처음 읽을 때에는 태양계 모형을 본다는 느낌보다는 예쁜 과학책을 읽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을 제대로 읽으려면 적어도 두 번 읽어야 한다. 두 번째에는 글을 보지 않고 그저 태양에서 출발해 해왕성에 이르기까지 종이를 한 장 한 장, 리듬감있게 넘겨본다. 역시 지구까지는 금새 도착하는구나. 화성도 그리 멀지는 않네? 목성은? 어... 한참을 가야 나오는군. 토성은 왜 이렇게 멀어? 혼잣말을 하면서, 글씨는 무시한 채 그저 한 장에 5천만 킬로미터짜리 회색 우주를 넘겨가면서 새삼 태양계가 무섭도록 텅 비어있다는 사실을 느낀다. 삽화 한 장으로 표현한 태양계 그림에서는 느껴볼 수 없었던 감각. 이렇게 왜곡된 모형때문에 내가 잘못 가늠하고 있는 과학 지식이 얼마나 많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방 안에서 잠시간의 여행을 떠나기에도, 학생들에게 교육 자재로 사용하기에도, 그리고 이토록 텅 빈 우주에서 우연히 만난 당신에게 선물하기에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