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친구와 함께 작은 출판사를 꾸려 나가고 있다. 부닥뜨린 문제들을 고민하고 해결하는 과정이 반복되던 중 막막한 앞날에 두려움을 느꼈다. 그러다 우연히 <이것도 출판이라고> 출간 소식을 들었고, 구원의 손길을 요청하듯 책을 신청했다.
아주 어릴 적부터 「황제의 딸」이라는 중국드라마를 지독하게 사랑했다. 이 작품이 언제까지나 내 삶의 중심이길 바랐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면서 「황제의 딸」은 점점 일상의 변두리로 밀려났다. 전공인 중국어를 살려 일하긴 했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내적 갈등에 시달리곤 했다. 어느 날은 ‘다 써진 책 같은 하루’를 보내고 퇴근하던 길에 이유가 명확하지 않은 답답함에 눈물이 날 정도였다. 그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참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거두절미하고 말하자면, 나의 꿈이 이루어지도록 ‘모든 것이 맞아떨어지는 타이밍’에 이 책을 쓰신 저자님의 글이 있었다.
재작년 여름, 나는 어느 기적적인 일을 계기로 스스로가 원하는 삶에 한 걸음 다가서 있었다. 직장을 다니며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소설 <황제의 딸>을 번역했다. 샘플을 만들어 출판사에 기획안을 넣어 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관련 경력이 전무했던 탓에 걱정이 앞섰다. 그즈음 자주 연락을 하고 지내던 친구에게 나의 계획과 걱정을 알렸는데, 며칠 뒤 친구가 글 하나를 공유해 주었다. 브런치에서 연재되고 있던 ‘이것도 출판이라고’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링크를 따라 들어간 곳엔 이런 소개글이 적혀 있었다.
‘번역이 하고 싶었지만 아무도 시켜 주지 않아 직접 1인 출판사를 만들고 번역한 책을 출판했다.’
바로 그때 ‘1인 출판’이라는 개념을 처음 접했다. 눈앞이 환해지는 것 같았다.
그로부터 1년이 조금 넘은 지금, <황제의 딸> 시리즈 1부 완결편이 출간을 앞두고 있다. 꿈이 현실이 되고 난 뒤 처음에 마냥 행복하기만 했던 기분은 서서히 가라앉고, 들뜬 마음 상태에선 잘 보이지 않았던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일들을 매일 마주한다. 물론 기꺼이 선택한 일이니 만큼 내게 닥친 문제를 바라보는 태도가 능동적으로 변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혼자 고요히 앉아 있을 때 밀려드는 두려움은 어쩔 수가 없다. 최근 들어 막막한 느낌이 더욱 강해지던 차에, 잠시 잊고 있던 글이 때마침 책이 되어 내 앞에 다시 나타났다.
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 봤던 연재글에선 단순히 책을 만드는 과정에 주목했는데, 짧은 경험을(짧지만 이것도 경험이라고) 하고 이 책을 읽으니 출판이 이루어지는 과정 이면의 것들이 보였다. 위트 있게 서술된 경험담을 읽으며 ‘내가 버겁다 느끼는 감정은 자연스러운 거구나. 나 지금 괜찮은 거구나.’ 하는 위로를 받았다. 글 속에 흠뻑 녹아든 저자님의 소신과 철학은 내가 추구하고 싶은 가치는 어떤 것인가를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러다 조금씩 알아차렸다. 내가 지금 불안한 건(현실적인, 경제적인 원인도 있겠지만 보다 본질적인 이유는) 출판 일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혼자 있을 때 두려움이 몰려오는 것은 여전하지만, 그 두려움에 대고 내가 이 일을 해 나가는 궁극적인 이유를 반문하면 신기하게도 속을 울렁이게 만들던 막막함이 사그라든다.
이 책은 어떤 면에서 내가 좋아하는 <황제의 딸>을 닮았다. 이해하기 쉽고 재밌다. 그런데 깊이마저 있다. 솔직하고 자유롭고 의로우며, 작고 여린 것들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다. 두 발을 현실에 디딜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고, 가슴이 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삶을 보여 준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 책을 직접 만들고 싶은 사람은 물론이고 마음에 열정을 품은 사람, 문득문득 혼자라 느껴지는 사람, 꿈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는 사람들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꿈이 현실로 발아될 수 있을 만큼의 커다란 힘이 담긴 책이다. 부디 이 멋진 힘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질 수 있기를!
매일 다 써진 책 같은 하루가 찾아오는 것이 견딜 수가 없어졌을 때, 출판을 꿈꾸기 시작했다. (…)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은 얼핏 보면 ‘단순한 선택의 문제’ 같지만 내가 경험한 바로는 ‘모든 것이 맞아떨어지는 타이밍’이 필요한 것 같다.- P217
번역을 하려면 출간 기획서를 써서 관심 있을 만한 출판사에 투고를 해야 하지만 번역 경력이 전혀 없는 나에게 번역을 맡길 출판사가 있을 리 없었다. 출판사가 요구하는 번역 기간에 맞춰 양질의 번역 결과물을 낼 수 있을지도 자신이 없었다. 내가 이 책을 번역하려면 방법은 딱 한 가지뿐이었다. 바로 직접 출판을 하는 것.- P29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과연 성공이 인간다운 삶의 필요 조건인지, 안정적인 삶이라는 것이 존재는 하는지 의문지 들기 시작했다. 세상은 현재의 사회 구조에 적응하지 못하고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일을 하려는 사람에게 ‘현실성 없다’고 말하곤 한다. 한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현실성이라는 인질에 발목을 잡혀 끝 모를 함정으로 빠져드는 기분이 들었다.- P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