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보는 일은 거울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그림뿐만이 아닙니다. 시와 소설, 음악과 무용도 보는 이의 내면을 비추어줍니다. 그러나 거울을 마주하듯 나를 반영하는 것은 그림입니다. 매일 거울을 보는 사람은 알고 있습니다. 얼굴에서 가장 고운 부위는 어디인지, 감정이 흐르는대로 얼굴이 만드는 표정은 어떠한지, 잠 못 이룬 다음 날 퉁퉁 부은 얼굴은 어떠한지. 거울은 시시각각 다른 내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어떻게 아는지 그림도 나를 똑같이 비추어 보여줍니다. p.006
지금 보면 현실감없는 자기계발서인데도 꽉 막힌 고지식쟁이인 나는 전혀 의심할 줄을 몰랐다. 책 종교 신자‘는 책이 하는 말이라면 모두 믿고 책이 시키는 일이라면 뭐든지 한다. 하루에 딱 네 시간, 간신히 잠을 줄여가며 몸을 혹사했다. 뭐라도 해서 이 시기를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p.49
노동과 감사라니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가난과 노동으로 점철된 삶에서 어떻게 감사를 거둘 수 있겠는가. 그러나 밀레의 그림에는 슬픔이 정화된 기쁨의 정서가 짙게 묻어난다. "항상 감사하라"는 권유는 인간의 본성에서 먼, 경전에서의 명령일 뿐이다. 밀레의 그림을 보라, 감사할 수없는 현실에 깊이 아파하다가 일어선 담대한 인간이 보이지 않는가. 아픔과 존엄이 여기 함께 한다. 쓰라린 신음소리가 배어나올 때 조용히 입을 가리는 것이 그가 노동을 맞는 태도다. 생을 초월하는 윤리는 담담한 그릇에고인다. ‘양치는 소녀와 양떼」가 그러하다. 지팡이 위로 맞닿은 두 손의 온기는 좀처럼 식지 않는다. 이 감사는 입술만 달싹거리는 허망한 주문이 아니다. 괴로운 노동으로 단련한 육체와 정신을 통과한 진심이다. p.53
고흐는 속삭인다. 생의 고단함을 너무 미워하지 말라 한다. 고달픈 생이야말로 인생 A급 인증이라 한다. 제 삶이 꼭 그러하지 않았느냐고 몇 번이고 다독인다. 별 수 있나, 생이란 제비뽑기 같아서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을, 그러니 진실한 나와 진실한 그대여, 고달픈 이번 생은 고흐의 그들처럼 기꺼이 담담하게 마주해보자. p.74
당신이 감사할 수 없을 때는 삶의 노동에 지친 때다. 당신은 오늘 감사의 노동까지 안 해도 된다. 이제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쉬자, 고된 순간을 서서히 흘려보내면서. 눈을 감자, 시간에 매이지 않도록,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기운을 회복하면, 이 힘겨움을 뛰어넘고 나면 당신은 자연스레 감사하고 자연스레 기뻐할 테니. 오늘도 열과 성을 다한 당신은 가장먼저 쉬어야 한다. p.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