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작가 출신 출판사 대표다.
지난 2009년에 이 책의 초출판을 보았다.
그 때도 그다지 현실적인 책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글로 돈 벌어 본 지는 9년, 본격적으로 종이 장사를 시작한 지는 불과 5년밖에 지나지 않았고, 내 이름을 단 책은 불과 5권만 냈지만, 이 책에서 살짝 언급한 짜증나는 편집자는 다 겪어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동네 한 바퀴를 돌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데리고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을 따오라는 건가?" 하는 게 이 책에 대한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로부터 또 15년이 지났다. 그 동안 내가 현장에서 느낀 편집자의 실력 변화는 어땠을까?
유감스럽게도 더욱 더 하향 일로였다. 그 15년 동안 내가 작가로서 겪은 함량미달 편집자들의 실례를 몇 가지 들어 보자.
- 본인 다루는 원고가 제2차 세계대전 건지 냉전 시대 건지도 모르는 사람이 있었다.
- 등장인물이 독일인인지 미국인인지도 구분 못 하는 사람이 있었다.
- 북경어와 광동어도 분간해서 써줄 줄 모르는 사람이 있었다.
- 철골과 철골판도 분간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 미터법이나 프랭크 시나트라 같은 기초상식도 몰라서 역/저자한테 찾아달라는 사람이 있었다.
- 돌아가신 분의 생전 생각이나 지금은 절판돼서 못 구하는 서적의 내용 같은 것도 알아오라는 요구를 하는 사람이 있었다.
- 특정 정치 이념 책에 써넣으라고 강요하는 사람이 있었다.
- 맘에 안 든다고 작품을 챕터 단위로 지우는 사람이 있었다.
- 처음에는 청소년용 책이라더니 나중에 초등생용 책이라고 은근슬쩍 말 바꾸면서 논조를 그에 맞추라고 강요하는 사람이 있었다.
- 역/저자가 원고에 써넣지도 않은 내용 제멋대로 끼워넣어서 판타지를 만드는 사람이 있었다.
- 심지어는 기초적 생활태도나 예절도 모자라서 역/저자에게 면전에서 은근슬쩍 욕하고 반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 요즘은 원고에 한자, 그것도 불교 격언 같은 기초적인 한자들만 나와도 멀미 일으키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들을 어찌 공공재의 성격까지 갖춘 지식 상품인 책을 생산하는 전문 인력이라 할 수 있는가? 것보다는 "할 줄 아는 거 하나도 없는데 '책이나' 만들어야지." 하면서 이 판에 흘러 온 <시정 잡배>들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
이미 출판인들 스스로가 인정하는 판이다. "출판계에 뛰어드는 사람은 모자란 사람 취급 받는다."라고 말이다.
이런 사람들을 단련시켜 저자가 원하는 이상적인 편집자상으로 개조하려면 도대체 얼마만한 자원과 노력이 들고 어떤 방법론이 적용되어야 할지 감도 안 잡힌다.
지금은 이상적인 편집자상을 논하기에 앞서, 현실을 그에 근접이라도 시킬 수 있는 실질적 방법을 얘기하는 것이 더 시급한 일 아닐까? 한국 군대보다 훨씬 먼저 뿌리와 허리가 붕괴되어 버린 한국 출판계는 빨리 이 부분에 대해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