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가게> 이나영 글, 윤정주 그림 / 문학동네
아침 식탁 앞에서 엄마가 중간고사를 위한 요점 정리를 읽어 준다면 어떨까?
영어 시험을 잘 봤다고 기뻐하면서 아침 식사 시간 영어CD를 한 단계 올려 들려준다면?
어릴 적에 들어왔던 ‘공부보다 착한 마음씨가 중요하다.’는 말은 초등 저학년까지만 유효한걸까?
시간, 분 단위로 빡빡하게 짜여있는 틀에 맞추어 숨 가쁘게 살아가야 하는 우리 아이들에게 1분의 시간도 아쉽다. 영어 학원에 지각할까 걱정하며 뛰어가는 주인공 윤아에게 어느 날 날아든 전단지의 문구는 솔깃할 수밖에 없다.
“시간이 부족한 분께 시간을 드립니다.” - 시간 가게
시간에 쫒기고 있는 나에게 만약 10분의 시간을 줄 테니 거래를 하자고 누군가 제안한다면? 행복한 기억을 기꺼이 줄 수 있을까?
행복한 기억 하나에 “나만이 쓸 수 있는 10분”을 살수 있다는 제안에 윤아는 기뻐하며 ‘아주 특별한 시계’를 받았다. 중간고사 수학 시험 시간에 엄마 아빠와의 행복했던 추억을 떠올리며 10분을 얻은 윤아는 수영이의 시험지 답을 베끼고 전교 1등을 처음 차지했다. 엄마의 행복한 모습에 윤아도 좋았다.
다음 수학 경시대회에서 시계가 작동되지 않아 시험을 망쳐서 엄마는 몹시 실망하고, 다시 시간 가게를 찾아가 시계를 고친 윤아는 행복한 기억 두 가지를 대가로 치르고 10분을 사기로 했다. 영어 인증 시험에서 시계 덕분에 윤아는 학원에서 1등을 차지하게 되었지만, 자꾸 사라지는 기억들로 몹시 당황하게 된다. 외할머니와 보내는 시간들, 절친 다현이와 생일 파티를 하면서 소중한 기억들을 다시 찾기로 결심하고 시간가게로 갔을 때 윤아에게 할아버지는 또 다른 거래를 제안한다.
수학 학원 선생님 말처럼 문제만 풀다가 죽는 건 아닐까하며 숨이 턱턱 막혀하는 주인공. 과연 엄마의 행복이 아이의 진정한 행복이 될 수 있을까? 떨어지는 성적과 함께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날아드는 엄마의 잔소리. 엄마 혼자 열심히 세워가는 아이의 인생 계획표.
외할머니의 자장가에 요동치던 아이의 마음이 평안을 얻고, 다현이와의 만남 속에 다시 기분 좋은 기운이 자신을 감싸는 걸 느끼면서 윤아는 깨달았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몸이 기억하는 행복한 추억들이 10분의 시간과는 비교할 수 없이 소중하다는 걸. 할머니를 또 잊게 되는 것은 두렵다는 걸.
엄마가 하라는 대로 했을 뿐, 자신의 꿈에 대해서도 행복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아이 윤아. ‘지금 행복하지 않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행복은 과연 무엇일까?
지금 시간의 주인은 누구일까?
‘윤아야, 너 지금 어떠니?’
우리는 어쩌면 아이들도 어른들도 자신을 돌아다볼 여유가 너무 없는 잔인하고 각박한 세상에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윤아만이 아니라 윤아 엄마의 모습은 더욱 애처롭다. 지혜는 세상을 오래 사신 할머니에게서 오는 걸까? 진심이 담긴 아이들의 용기 있는 고백이 어른들의 딱딱하게 굳은 마음을 열어줄 수 있는 열쇠인건 아닐까? 지혜는 정직한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될 때 발견하게 될 특별한 선물 같은 것...
작가의 담백한 글 느낌이 참 좋다. 시간을 거래한다는 흥미로운 소재, 아이들에게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다루는 의미 있는 주제로 책의 깊이가 느껴진다. 또 아이들의 일상을 담담하게 그려내어 현실감 있으면서도 영화처럼 세밀하게 그려지는 묘사로 글이 술술 잘 읽힌다.
이야기의 후반부에서 더해지는 박진감과 속도감 그리고 속 시원한 느낌을 팍 전해 주던 마지막부분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놔야겠다는 생각.
그리고 작가의 글과 참 잘 어울리는 예쁜 그림이 정말 맘에 들어 잘 샀다는 뿌듯함.^^ 지금 방학을 맞이해 필리핀에 어학연수 가 있는 6학년 졸업을 앞둔 조카가 돌아오면 함께 읽으며 진솔한 얘기들을 나누어보고 싶다.
가슴 훈훈하고 상쾌한 느낌을 전해주는 이나영 작가의 다음 작품도 기다려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