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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amwon님의 서재
  • 가벼운 고백
  • 김영민
  • 16,920원 (10%940)
  • 2024-07-10
  • : 7,057

가끔 아주 가끔 책을 읽는 이들의 특징이 있다. 책 한 권을 읽고는 이렇게 말한다. "그 책 참 좋더라"라고. 이런 이들을 압도할 수 있는 말이 하나 있다. 바로 "아, 나는 그 작가 책 다 읽어봤어"이다. 통독 (通讀)이란 그 작가의 모든 말을 생각을 모두 듣고 먹고 씹어 보았다는 것이다. 독서법 중 가장 하기 쉽고, 가장 하기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김영민 교수는 나에게 몇 안 되는 통독의 대상이다. 가볍지만 무겁고 진지하며, 오솔길을 걷는 듯 하지만 절벽으로 향하는 길로 안내하는 진한 패러독스가 가득하며, 경쾌한 리듬에 그 어떤 '몸치'라도 춤을 추게 만드는, 보기 드문 기인 중 하나 이다. 학력 또한 기이하다. 학부에서는 철학을 전공했고, 정치 사상사로 (그것도 하버드에서) 박사를 받았고, 신춘문예 영화 평론 부문 당선자이기도 하다.



정치사상 (정치 외교학과) 교수임에도, 그는 아이돌의 인기를 누린다. <추석이란 무엇인가> 칼럼으로 아이돌 반열에 올랐다. 이 질문은 누구에게나 두려운 비수와 같은 질문의 전형 (典型)이 되었다.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공부란 무엇인가>,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인간의 하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등을 읽었다. 그의 책은 내용도 내용이지만, 제목 또한 백미요 압권이었다. <가벼운 고백>의 출간 소식을 듣고는 -내용도 살펴보지 않고- 구매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이제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그는 글을 쓴다기보다는 '드립'을 치고 있었던 게다. 그렇기에 진한 허무처럼 잔영과 잔향은 오래 남으며, 긴 시간 동안 곱씹게 만들었던 것이다.


'드립'이란 단어를 잘 알지 못했고,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그저 언어유희, 말로 장난을 치거나, 아재 개그 정도의 허무성을 지닌 말로 생각하고 있었다. 김영민 교수의 신간 <가벼운 고백>의 발문을 읽으며, 파란 창에 '드립'을 타이핑하면서 알게 되었다. "애드리브 (Ad lib)의 줄임말에서 유래한 한국 인터넷 은어로 주로 부정적인 또는 긍정적인 의미의 즉흥적 발언, 마법의 말을 일컫는다. 부정적 뉘앙스로 다양하게 쓸 수 있는 경우가 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김영민 교수는 드립을 단순한 언어유희가 아닌, '성찰적 단문'이라고 했다. “정신의 빈 곳을 가격하는 짧은 문장"이라고 했다. 견문하고 반문하고 의문하고 탐문하고 자문하게 이끄는 문장이라고 했다. 아집의 울타리를 벗어나 독자 스스로 질문하게끔 하는 견문을 나누며 그 세계를 확장시킨다고 했다. 비틀고 반문하며 거꾸로 서서 세상을 바라보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의 모든 책들은 바로 이 '드립'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의 드립은 도끼처럼 머리를 가격한다. 아프다는 고통보다는 허를 찔렸다는 허무감, 그래서 더 고통스럽다는 표현이 맞다.


세상을 엄근진 (엄숙, 근업, 진지)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낯선 눈으로 독자의 무지를 일깨우며 껄껄껄 웃고 비웃고 있는 듯하다. 깊은 유머로 엄근진을 압도하고 격파한다. 김영민 다운 글들이다. 글과 영화로 춤을 추게 만든다. 어디선가 만화를 보며 낄낄대는 웃음소리도 들린다. 어떤 때는 세상을 비웃으며 세상을 꽤뚤어 본다. 시대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고찰과 아울러, 그 시대와 세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때로는 "너희들도 별 수 없지?" "그러니까 너무 심각하게 살지 마" "삶이라는 것이 다 그런 거야"라고 말하며 어르고 달랜다. 그 역시 독자들을 무척이나 좌절시키는 나쁜 작가이다. 글로 방귀 좀 뀐다는 이들과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다리이로 찬물을 껴붇는 아주 질이 좋지 않은 작가이다.



그의 드립 모음집 <가벼운 고백>에서 정철 카피라이터가 연상되었다. 낯설고 불편하게, 더하고 빼고 곱하고 나누고, 생각의 비틀기 등을 통해 글을 쓰는 정철을, 넌지시 속삭이며 따뜻한 눈으로 안아 주는 정철을. 두 작가 모두 일상적이면서도 쉽게 읽히는 문장을 통해 깊은 성찰을 불러일으키는 능력을 지녔다. 겉으로는 가볍고 간결해 보이지만, 그 속에 담긴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글은 닮아 있다. 또한 <가벼운 고백>의 드립들은 곧바로 광고 헤드라인이나 보디의 글로 쓰여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그들의 글은 짧다. 기실 장문보다는 단문을 쓰기가 더 힘들다. 절제가 만용보다 힘들듯이. 완벽이란 무엇을 더할 것이 없거나 뺄 것이 없는 것이 아니라, 더하거나 빼면 무너지는 것이라고 한다. 그들의 단문들은 완벽에 가깝다. 게다가 비시시 그리고 피식 옅은 미소를 짓게 한다. 그들의 글은 <잠언집>을 방물케 한다. 급소를 푹 찔리는 듯한 고통과 아울러 깊고 아득한 카타르시스도 선사한다.



상이점은 정철은 경제학을, 김영민은 철학과 정치학을 전공했다는 것이며, 정철은 두 손을 모으고 말하지만, 김영민은 허리에 손을 얹고 어깨에 힘을 주고 말한다는 것이다. 김영민은 진정 얄밉다. 그러나 얄밉지 않은 김영민, 그는 안개 자욱한 절벽에서 만화를 보며 낄낄 웃고 있는 선사 (禪師)와 같다.



책 중에 오랫동안 뇌리에 맴도는 문구가 하나 있다. "기생충을 향한 최대의 복수는 기생충에 기생하는 것이다" 이 말은 복수 중에 2 번째로 악독한 방법이다. 언젠가 어디선가 읽었던 "최고의 복수는 원수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원수가 부끄러워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하는 것이다"를 제외하고. 상대의 생존 방식 자체를 역이용하는 날카롭고도 심오한 통찰이며, 패러독스이다. 궁금해졌다. 영화 기생충에서 진정한 기생충은 누구였일까.


언제나처럼 책을 읽고 뒷면에 한 줄의 글을 남겼다. "김영민은 영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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