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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amwon님의 서재
  • 베이비부머가 노년이 되었습니다
  • 김찬호
  • 15,750원 (10%870)
  • 2024-02-15
  • : 1,432

글을 읽다 보면 저자가 지은 글들은 여러 모습과 느낌으로 다가온다. 어느 글에서는 맛과 솜씨와 멋이 느껴지고, 한없는 깊이도, 경계 없는 넓이도, 그윽하고 짙은 향기도, 지극한 아름다움도 느껴진다. 이로 인해 작가들은 어쩌면 독자들에게 글에 대한 경외심과 아울러, 글쓰기에 대한 좌절과 절망과 모멸감까지 부여하기도 한다.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글쓰기의 한계를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소위 시중에는 자칭 타칭 방귀 좀 뀐다는 글쟁이들이 많지만, 이 모든 특징을 갖춘 글쟁이들은 쉽게 찾아볼 수 없다. 깊이만 있거나, 넓이만 있거나, 맛만 있거나, 멋만 있는 작가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아마도 김찬호는 이 모든 특성을 두루 갖춘 몇 안 되는 글쟁이 중 하나일 것이다.



항상 그의 관심은 (사회학자로서 아니 한 인간으로서) '사람'을 향해있고, 그것도 제대로 된 '사람'과 그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에 현미경과 망원경을 가져다 댄다. 그의 책을 10여권 읽어 본 나로서는, 이제는 그가 하는 '말'들이 식상할 수도 있다. 그가 항상 강조하는 것은, 멈춤, (자기) 성찰, 통찰, 반성, 깨어있음, 돌봄, 이웃, 연대, 연민, 바라봄, 돌아봄 등이다. 그러나 이 단어들은 그가 새 책을 출간할 때마다 업그레이드 되어 힘을 더한다. 그가 택한 주제들은 깊고 묵직한 반향을 던져주기도 한다. '생애의 발견'이, '모멸감'이 그러했고, '유머니즘'과 '대면 비대면 외면'이 그러했다. 시대가 겪고 있는 아픔과 고통을 시의적절하게 어루만지고 감싸 안는다.



그는 언어 연금술사이다. 사회학 교수가 여느 글쟁이 보다 잘 쓰고 어휘를 잘 선택한다. 그가 사용하는 단어들은 반드시 그곳에 위치해야 할 그 단어들이다. 대체 불능한 단어를 골라 쓴다. 여느 산문집보다 글솜씨가 빼어나다. 칼럼이 아닌 에세이를 읽고 있는 듯하다.



그는 진정 현대판 간서치 (看書痴) 이다. 다독은 물론 다양한 매체에서 자료를 수집하고 기록한다. 어쩜 그는 지식과 지혜를 저금하는 성실한 예금주이다. 시, 에세이, 심리학, 사회학, 논문, TV, 영화, 신문 등 그의 관심의 레이더의 주파수는 강하고 넓다. 그러니 그의 글의 깊이와 넓이는 깊고 넓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잘 버무린다. 글맛과 글멋을 벼리고 빚어낸다. 목소리는 크지 않고 읊조리지만 그 울림은 크고 폐부를 찌른다. 뻔한 이야기이지만 뻔하지 않다. 




<베이비부머가 노년이 되었습니다>라는 제목은 출판사와 편집인이 기피할 정도로 아주 긴 제목이다. 게다가 이제는 노년이 된 저자의 흑백 사진이 (아주) 커다랗게 인쇄된 책 표지는 호불호가 있었을 게다. 아마도 노년에 들어선 저자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나 보다. 



이 책은 김찬호의 칼럼집이다. 그동안 썼던 칼럼을 40개의 키워드로 분류하고 재배치하여 펴낸 책이다. 보통 칼럼집은 대 주제별로 (대충?) 분류하여 챕터를 만들지만, 이 책은 남달랐다. 작가와 편집자의 노고와 기지를 엿볼 수 있다.


기실 칼럼니스트들은 키보드 워리어로써 좋은 말과 멋진 말을 계몽적으로 말한다. 거기다가 어디선가 인용한 일화나 책의 문구를 넣어 장식한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너희들) 독자들은 이 고매한 자의 말을 따르고 행해야 한다는 훈계조의 칼럼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김찬호는 다른 점이 하나 있다. 상당 부분이 자신의 이야기이며, 자신도 (독자들과 마찬가지로) 온전하고 완전하지 못한 인간임을, 자신도 외롭고 고통이 있음을 고백하고 자백하는 고해성사를 한다. 그것도 아주 세련되게 말이다. 그리고 "너희들은 이래야 한다"가 아니라, "저도 이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베이비부머가 노년이 되었습니다> 또한 그러하다. 노년에 접어든 작가의 자기 고백서이자 자기 성찰서이다. 그래서 자신의 현재 모습을 책 표지에 흑백으로 실었나 보다. 나를 제외한 여러분이 아니라, 저자 자신을 포함한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여느 잠언집을 능가할 정도로 엄중하다. 이야기는 일상적이나 무게는 남다르다. 이제 회당의 의자 배치가 달라졌다. 이제는 군림과 권력과 존중을 강요하던 자리에서, 이제는 위엄과 권위와 자발적 존경을 불러일으켜야 하는 말석에 자리 잡는다. 집착과 애착과 회한에 머물지 말고 줏대 있고 과시와 허세를 내려놓는, 비우고 새로운 것으로 채워가야 하는 이들이 기억해야 할 명상록이자 고백록이다.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이 되었고, 이렇게 살 수도 있고 이렇게 죽을 수도 있을 때 예순살이 되어, 노년의 문을 열고 들어선 이들은 필수적으로 읽어야 한다. 특히 한국 남성 베이비 부머들은 반드시 그러해야 한다. 어쩌다 나이를 (들지 않고) 먹었으며, 어쩌다 노인이 된 이들은, 보수교육을 듣듯 새로운 포지션에 맞는 새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 귀뿐 아니라 모든 것이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순해져야 한다. 순해짐이란 완고해짐이 아니라 견고해짐이다. 죽음을 직시하며 매 순간 깨어 있어야 한다. 이 책은 노년기에 접어든 이들에게 지극히도 적합하다.



노년의 문이 저만치 보이는 이들도 마찬가지이다. 미리 새 옷을 구매하여 치수를 맞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노년에 접어든 아비와 어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모든 이들을 위한 '생활 지침서'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글맛이 나고 글멋이 있고 글솜씨가 넘치는 명문장들이다. 그중 몇 개만 옮겨 본다.



"언어가 억압의 도구로 작용하기 쉬운 세상이다. 지위나 나이 등의 위치 에너지에 편승하여 비난과 폭언을 내뱉는 경우도 흔하다. 그 결과 타인으로부터 소외되거나 아집과 독단의 감옥에 스스로 갇혀버린다. 탈출은 가능한가. 서로의 맥락을 교차시키면서 이야기를 확장하는 공간이 열려야 한다. 구태의연한 허위에서 벗어나 존재 그 자체를 '추앙'하는 관계, 투명한 문법의 서사를 통해 우리는 좀 더 의연해질 수 있을 것이다." (P50~51)



"일상 속의 담담한 여백, 넉넉한 마음의 품이 있어야 한다. 꽉 채워지지 않은 그릇에서 생명의 힘이 자라난다. 그러니 약간의 부족함과 허기를 즐기자. 결핍을 꾸준하게 훈련하자. 적게 소유하고 풍요롭게 존재하는 기쁨이 선물로 주어진다." (P13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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