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을 떠나고 싶다는 바람은 줄곧 있었다. 다만 그게 충동에 가깝거나 막연할 뿐이어서 단지 "떠날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에 그치는 게 대부분이었다.
갈 수 있으면 가야겠다고 좀 더 마음을 먹은 건 작년부터였다. 평소 자연환경과의 관계를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었는데 날이 갈수록 우리나라에서 사는 게 불만스러웠다. 최근 들어 심심찮게 보도되는 중국발 미세먼지, 잊을 만하면 뉴스로 나오는 이웃나라 일본의 방사능 오염 소식 등 점점 마음 편히 숨쉬고 살기가 각박해서이다.
흔히 이민국으로 많이들 고려하는 나라는 북유럽이나 오세아니아, 혹은 앵글로 아메리카 지역이다. 삶의 질이 워낙 좋으니 기회만 된다면 당연히 가고 싶은 게 사실이다. 이를 쉽게 결단으로 옮기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 나뿐만 아니라 대다수가 이와 같은 점으로 발목이 잡히리라 보는데) 크게 다음과 같다. 1) 영어가 모자라서 2) 돈이 넉넉하지 않아서 3) 마땅한 가이드라인을 찾기가 어려워서.
솔직히 이민 정보는 포털 검색만 하면 주루룩 나온다. 책으로 수십 권은 써도 될 분량일 거다. 하지만 부유하고 잘 사는 선진국에 가서 굳이 가난에 허덕이는 삶을 살고 싶은 게 아니라면, 이 책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길을 찾아보는 게 더 현명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에 동의한다면 <은퇴이민 가이드>는 꽤 만족할 만한 자료라 할 수 있다. 이민에 필요한 언어나 자금 문제는 이 책이라고 딱히 뾰족한 해결책을 제시하진 않지만(해줄 수도 없고), 가이드라인으로서는 현존하는 서적 중에서 최고가 아닐까 싶다(라고 쓸 정도로 한국어로 출간된 이민 서적이 거의 없다).
이 책은 월 200만~300만 원 수준으로 타국에서 넉넉하는 법을 소개하는 게 목표다. 과연 그게 가능할까 하는 의심은 읽어나가다 보면 "음, 과연. 그렇군."하는 납득과 함께 사라진다. 한국보다 물가가 저렴하여 소득에 비해 지출을 크게 줄일 수 있다면, 충분히 풍족하게 살 수 있다. 실제로 이 책에서 주로 다루는 남미나 유럽 및 동남아시아 일부 국가라면 황당무계한 소리는 결코 아니다.
나 역시 그런 경험을 이미 한 바 있다. 운 좋게 20대 초반에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한 달간 머무른 적이 있었다. 침대가 있으며 샤워 시설도 있는 개인실에서 맛있는 밥과 달콤한 후식을 매끼 챙겨 먹고, 틈만 나면 꾸따 해변에 나가 자연을 즐겼다. 때로는 우붓에 가서 원숭이 구경을 하거나 미술작품을 관람하고 한동안 감상에 젖기도 했다. 이 모든 게 한화 150만 원으로 가능했으며, 정말 부족함 없이 생활했다. 그래서 저자의 말이 믿을 만하다는 것쯤은 금세 알았다.
서술 방향만 타당한 것은 아니다. <은퇴이민 가이드>의 장점은 처음부터 끝까지 '현실'에 기반을 둔 체험 수기 및 보고서라는 점이다. 한국에서 누리기 쉬운 빠른 인터넷, 좋은 의료 서비스를 일정 부분 포기해야 한다거나 영어는 웬만하면 필수라는 사실을 굳이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반복하여 드러내면서 떠나기 전에 스스로 점검해야 할 부분을 돌이켜보도록 이끈다. 읽다 보면 언어가 생각보다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며, 그보다 다른 부분에 덜미를 잡힐 수도 있겠거니 싶었다.
특히 <은퇴이민 가이드>를 탐독하며 마음에 든 점은 한국인의 실정에 맞춘 번역이다. 사실상 거의 새로 썼다 싶을 만큼 한국인 입장에서 다룬 부분이 군데군데 나타난다. 예를 들면 앞서 언급한 인터넷과 의료 서비스는 한국의 장점이라고 밝혔는데, 단순히 외서를 번역했다면 '역주'가 아니고서야 말조차 나오지 않았을 터였다.
청소년이라도 읽기 쉽도록 가독성도 좋은 편이다. 나이 드신 어르신 분들 역시 읽기에 별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고로 조금이라도 한국을 (잠시나마) 떠나고 싶은 누구에게나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