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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을 옥탑 방에서 시작한 나에게 서재는커녕 자그마한 책꽂이조차 사치였다. 장롱하나 들여놓으면 꽉 차는 공간 탓에 가로세로 맞추어가며 꼭 필요한 소량의 가구만으로 생활해야했으니까. 시간이 지나 천상생활을 마치고 지상에 안착했을 때 엄마가 되고, 공간이 조금 넓어졌을 때 아이의 전집을 샀다. 작가의 책꽂이가 라면박스였다면, 나와 아이의 책꽂이는 전집박스였다. 동화책을 읽기도하고 탑처럼 쌓았다 무너뜨리고 단칸방을 책을 펼쳐 세워 원하는 만큼의 여러 칸 방을 만들기도 하며 딱딱하고 매끈매끈한 양장본의 질감을 이용하기도 하고 느끼다가 놀이가 끝나면 박스의 1층과 2층에 번호대로 줄을 세웠다.
지금도 3명의 아이들 중 누군가는 자기만의 방을 가질 수 없는 상황이라 여전히 서재가 없다. 하지만 거실과 각 방에는 책상이 있다. 그중 애착이 가는 책상은 안방의 책상이다. 학생용 책상이 망가져 버리고 상판에 대리석 시트지를 붙이고 공간박스에 올려놓으니 책꽂이 겸 책상이 되었다. 작가의 책상처럼 럭셔리하진 않지만 나름 멋스럽고 실용적이다. 조금 높은 것이 흠이기는 하지만.....
작가의 직업이 목수이다 보니 나무 가구 이런 것 들을 생각했었다. 하지만 손에 쏙 들어오는 자그마한 책 한권에는 너무나 다양한 이야기들이 들어있다. 자서전 실용서 철학서를 본 듯한 느낌이랄까. 그래서 마치 이 사람을 이 사람의 결을 알 것만 같은 느낌이다.
p11 『나의 관심사는 크게 세 가지다. ‘조선’과 ‘공예’, 그리고 ‘아나키즘’. 굳이 구분하자면, 조선과 공예에 대한 관심은 목수라는 직업에서 출발했으며, 아나키즘은 김윤관이라는 개인에게서 비롯된 관심사이다.』
p46 『온갖 사물로 어지러운 크고 넓은 책상을 갖는 것은 크고 복잡하고 어지러운 세상을 내 앞에 두는 것이다.』 『이 복잡한 세상을 읽고 분석해 나만의 대처 방식과 룰을 만들고 정리 하는 것, 이것이 내가 나의 크고 어지러운 책상에서 하는 일이다.』 이 책은 희한하다.
작가와 같은 작업을 하고 같은 책을 읽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혹은 다큐나 드라마를 본 듯 한 그래서 머릿속엔 활자가 아닌 장면들이 둥둥 떠다니는 아무튼 그런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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