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너에게 나는
  • 아몬드 (양장)
  • 손원평
  • 12,600원 (10%700)
  • 2017-03-31
  • : 32,398

눈 앞에 아주 큰 일이 일어난다. 남들이 보면 아연질색하고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그 순간에도

그는 모른다. 그냥 지나가는 일처럼 아니 평범한 일처럼 객관화가 아닌 느끼지 못하는 병(?)에 걸린다면 당신은 어떤 기분이 들 것인가? '알렉시티미아' = '감정 표현 불능증' 걸린 한 소년의 성장일기를 보면서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다. 한번쯤은 모르는 일처럼 내게 다가온 숨막히게 힘든 일들을 극복하니 피하고 싶다고 말이다.

작가는 우리에게 반문한다. '그게 행복한가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그런 삶이 과연 좋은 것일까요?'

주춤한다. 답을 잃은 아이처럼 머리를 숙이고 쭈볏거리는 부끄러운 나 자신을 보게 된다.

선윤재. 어린시절 남과 다른 정서적(?) 장애로 왕따를 당하게 된다. 재수가 없다. 느낌이 안 좋아 거기다 누군가가

죽어가는 그 순간에도 그는 너무나 평온하다. 느낌이 없다. 더욱이 그 앞에서 자신의 외할머니인 '할멈'이 죽고

어머니가 큰 사고로 의식을 잃은 순간에도 그는 지나치게 조용(?)했다. 우리는 수근거릴지 모른다. 이상한 아이를

넘어 불행한 기운을 타고한 아이처럼 그를 보면서 중학교 시절 기술 선생님이 생각났다. 자신은 남처럼 부끄러우면 얼굴이 빨개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는다고. 그래서 남들에게 대담하다는 칭찬 아닌 칭찬을 듣지만 자기는 정말

그것이 좋아보이지는 않는다고 어떤 상황에서는 가끔 남들에게 싸가지가 없어보인다는 말도 듣는다고.

남들과 다르다. 그것이 우리 사회를 아우르는 잣대처럼 남들을 비난하고 억압한다. 그 기준에 조금이라도 벗어라면 가차없이 비난하고 욕하고 손절하는 우리의 모습들. 너튜브와 각종 SNS 범람하는 정보 홍수속에서 진정한 정의는 댓글이나 좋아요라는 말로 가장되어 우리를 잘못된 판단의 감옥속에 가둔다. 한 예로 아빠 찬스라고 하면서

누군가를 엄청나게 비난했던 한 정치인도 결국 그런 그도 동일한 사람이었고 결국 비난의 칼날에 서고 만다.

왜 그는 그 누군가를 그렇게 비난했을까? 결국 부메랑이 되어 더 큰 모욕을 받게 되줄 그는 알았을까?

우리가 말하는 기준에 스스로를 겨누고 있지 않았을까? 그러기에 그 기준에서 넘 얽매히지 말아야 한다.

스스로가 변해야 한다. 진정으로 마음이 움직여야 한다.

주인공 그는 어머니와 할멈의 노력과 자신의 의지 그리고 그 앞에 나타난 두 남녀 친구 곤이와 도라의 도움으로

변하게 된다. 세상의 첫 단추를 잘못 끼워 방황해하는 곤이와 자신의 달리기 꿈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에게

반항하는 도라. 그들은 불완전되고 결핍된 서로의 영혼에 서서히 스며들게 된다. 결국 서로를 감정 이상의 마음으로 이해하게 되면서. 어린 아이가 첫 발을 떼는 것처럼 힘겹지만 세상속으로 그들은 나아가게 된다.

이 책은 청소년 성장소설이라고 가두어두기에는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 코로나 이후 우리 자신을 돌보기도

힘든 세상속에서 자칫 어떤 일에도 감흥을 못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신문 기사나 방송에 소소하게 소개되는 너무나 가슴 따뜻한 이야기들이 여전히 존재함은 세상에 사랑이 아직까지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나이든다는 말속에 연륜과 인생의 맛을 느낀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다 아직도 미숙한 아이일 뿐이었고 이 책이 이런 나에게 마음 한 구석 큰 배움을 느끼게 했다.

사랑이여 지워지지 않은 인간의 마음 그것만큼은 잃어버리지 말자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 책을 마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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