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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토끼님의 서재
  • 도련님
  • 나쓰메 소세키
  • 10,800원 (10%600)
  • 2013-09-10
  • : 8,153

유쾌하고 통쾌하다~! 나쓰메 소세키의 장점은 바로 이것이다. 

나쓰메 소세키는 고양이의 눈을 빌려 세상을 비판하고 도련님의 입을 빌려  세상을 조롱한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 작가는 고양이를 통해 한 발 물러서서 바라보는 세상을 전달했지만, '도련님'에서는 부정하고 야비한 세상에 뛰어들어 부딪치고 깨지며 현실을 겪고, 그 현실에 맞서 철저한 정의감으로 한 방을 날리며 유유히 떠나간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처음부터 장편의 소설로 쓰려고 시작했던 글이 아니라서 소설로서의 전개와 위기, 절정의 구도를 찾을 수 없지만, '도련님'은 소설로서의 구성과 스토리를 가지고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의 문체 그대로 독자를 빠져들게 한다.


도련님은 어려서부터 집안에서 말썽쟁이로 구박만 받는다. 하지만 자신의 좌충우돌 막무가내 성격은 모두 부모님께 물려받은 것! 부모님께 물려받은 성격때문에 부모님께 구박받는 불쌍하고 안타까운 주인공이지만 한 번도 부모님을 원망해본적도 없고, 부모님과 형들 몰래 자신을 애지중지 아껴주는 하녀 기요를 오히려 공정치 못하다고 이야기하는 정직하고 올바른 인물이다. 하지만 언제나 자신은 당당하고 옳을지언정, 세상을 편하게 살아가기에는 오히려 힘든 성격이니.. 하녀 기요도 항상 도련님 걱정 뿐이다.

도련님은 다니던 학교를 마치고 작은 시골 중학교의 수학선생님으로 부임하며 처음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처음 학교에 출근하여 각 선생님들을 소개받는 장면에서, 나는 '고양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 나와 같은 수학교사인 홋타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늠름한 체격에 밤송이 머리를 하고 있어 히에이잔의 악승이라 할 만한 상판이었다. 정중하게 임명장을 보여주었더니 아예 거들떠 보지도 않고 말했다.

"야아, 자네가 새로 온 사람인가? 나중에 놀러오게. 아하하하!"

뭐가 아하하하냐. 예의도 모르는 이런 작자한테 누가 놀러간단 말이냐. 나는 이때부터 이 밤송이에게 산미치광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과연 고양이의 말투 그대로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읽으며 글이 끝나감을 아쉬워하던 나로서는 이 부분을 읽으며 한참을 웃었고, 도련님을 읽기를 잘했다고 몇 번이나 생각했다. 


학교에는 너구리 교장, 빨간셔츠 교감, 알랑쇠 미술선생, 산미치광이 수학선생, 이 학교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고고한 영어선생 고가 등이 근무한다. 공정해 보이고 모든 학생과 교사를 사랑하는 듯한 표현들을 가득 늘어놓지만 실제로는 진실을 위해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는 너구리 교장과 교장의 방관 아래 온갖 야비한 방법으로 권력을 휘두르는 빨간셔츠 교감, 그리고 그 곁에서 자잘한 심부름을 도맡아하며 일신의 평안을 꾀하는 알랑쇠 미술선생. 


처음 부임한 도련님에게 모두들 다른 사람을 믿지 말고 자신만을 믿으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도련님은 누구도 믿을 수 없다. 학생들에게 놀림을 당하고나니 빨간셔츠와 알랑쇠는 산미치광이가 시킨 것인듯 말꼬리를 흘리고, 산미치광이가 나쁜가 싶으면 회의에서 도련님을 두둔하는 발언을 한다. 서서히 학교내 여러 사건들에 대한 판단이 정확해질 때쯤, 도련님은 야비한 일당이 파놓은 함정에 빠져들어 곤혹을 치른다.


이 작은 학교는 우리 사회의 가장 평범한 단면이다. 산미치광이가 Might is right.(힘이 정의다)라고 도련님에게 알려주며 교장 교감에게 고분고분한 것이 좋을 거라 말하듯이, 우리 사회의 어디에서나 권력은 존재하고 권력에 대항하는 자는 힘들고 아프다. 하지만 아프다고 해서 모두가 굴복한다면 이 사회에서 살아남을 자는 과연 누가 있을 것인가. 알랑쇠는 교감의 잔심부름을 하며 작은 학교에서 소소한 영화를 누리고 있지만, 빨간셔츠가 불리해지면 알랑쇠를 버릴 것이고, 너구리 교장이 자신의 위치에 위협을 받는 순간, 빨간셔츠 교감은 그 자리에서 내쳐질 것이다. 내가 살기 위해 누군가를 쳐내는 일은 당장 나를 위해 잘한 일이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결국은 스스로가 조금씩 낭떠러지로 발을 내딛는 셈인 것이다. 짧지만 위트있고 강력했던 도련님. 어떤 상황에서도 주장을 굽히지 않고 비겁함을 경멸했던 도련님처럼 당당하게 살기를 바라고 다짐해본다. 




한 것은 한 것이고 안 한 것은 분명히 안 한 것이다. 나 같은 사람은 아무리 장난을 쳐도 뒤가 켕기는 게 없다. 거짓말을 하고 벌을 피할 생각이라면 처음부터 장난 같은 건 아예 하지 말아야 한다. 거짓말과 벌은 붙어 다니기 마련이다.
전근 가고 싶지 않은 사람을 억지로 가게 하면서 그 사람 월급의 일부분을 가로채다니 그런 몰인정한 일을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표면적으로는 빨간 셔츠의 말이 아주 타당하지만, 겉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마음속까지 끌리게 할 수는 없다. 돈이나 권력이나 논리로 사람의 마음을 살 수 있다면 고리대금업자나 순사나 대학교수가 사람들에게 가장 호감을 사야 한다. 중학교 교감 정도의 논법에 어떻게 내 마음이 움직인단 말인가. 사람은 좋고 싫은 감정으로 움직이는 법이다. 논리로 움직이는 게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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