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부산에 다녀오면서 부산의 유명한 어묵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부산어묵에 대한 기대감 가지고 먹기 전에 재료명을 봤습니다.
어묵의 대부분 차지하는 66%의 연육 성분이 외국산이었습니다.
국내산은(당근, 대파, 양배추 등)15% 정도 였습니다.
부산이 국제도시여서 그런가보다 했습니다.
교회가 세상을 걱정해야 하는데
세상이 오히려 교회를 걱정하는 시대입니다.
세상이 교회를 오해한다고 생각하고 싶지만
세상이 인정할 만한 교회의 영향력은 부족합니다.
기독교는 역사 속에서 많은 시간 오해받았습니다.
하지만 오해 속에서 기독교의 본질은 인정받았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1세기 기독교와 공동체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초대교회로 돌아가자고 외치는 그 교회 말입니다.
니제이 굽타는 우리에게 당시 세계의 중심이었던 로마사회에서
어떻게 기독교가 이상하고 위험하나 매력적인 종교로 인정받았는지
자세히 설명해줍니다.
책의 중심 서술 방법은 당시 로마 사회 및 종교와 기독교를 비교합니다.
다른 점이 무엇이며 그래서 어떤 오해를 받았는지..
하지만 다른 점으로 인해 당시 사람들이 기독교의 어떤 점에 매력을 느끼고 인정했는지 설명해줍니다.
기본적으로 로마 종교는 ‘팍스 데오룸’ 즉 ‘신들과의 평화’를 추구합니다. 그들의 개인, 가정, 문명의 평안이 신들에게 달려있기 때문에 인간은 신들에게 제물, 기도 존경, 헌신을 바칩니다. 그러면 신들은 인간에게 답례로 건강, 안전, 부를 내려주는 순환 구조입니다. 즉 종교의 목적인 인간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 신들과 거래하는 성격이 강합니다.
그래서 로마 종교의 믿음, 신전, 사제, 신상, 예배 등등 모든 것의 핵심은 ‘팍스 데오룸’입니다. 그저 신들의 세계를 인정하지만 친밀하고 연합되기보다는 신들을 어르고 달래서 인간의 목적을 얻어내는 것이 핵심입니다.
반면 당시의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경험하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상호관계입니다. 복음에 대한 믿음과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에서 신실함 등등...
더 나아가 자신들이 믿는 신의 성품에 참여하고 예수 그리스도께 사로잡혀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고자 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고 차별 없이 동등하게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즉 가장 큰 차이는 팍스 데오룸(신들과의 평화)에서 카리타스 데이(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로마의 종교는 팍스 데오룸을 위한 정치적이고 통치적인 종교의 성격이 강했다면
기독교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을 향한 사랑의 하나님이 교회를 통해 하나님과 사랑을 표현하고 나누기 위해 함께 하는 공동체의 성격이 뚜렷합니다.
이런 배경을 가장 인상적인 설명하는 부분이 예배입니다.
그리스, 로마 등 대부분의 고대 종교의 예배는 우주의 정치 구조 강화, 신의 분노 달래기, 신적 권능과의 상호성과 교류를 촉진하는 활동 등이 포함됩니다. 이런 활동은 신과의 사랑의 관계가 아닌 사업적 성격이 강하며 거래 수단으로 공간에서(신전) 연기와 피(예: 동물제사)가 대표적입니다. 또한 신성한 숲, 신탁소, 제단, 신전, 신상과 같이 특별한 장소가 필요했습니다.
반면 기독교는 신과의 교제를 제단과 제사의 영역 밖으로 옮겨 놓았을 뿐 아니라 신을 어디서나 아버지로 부르며 소통합니다. 대신 의식이나 제사 대신 예배라는 용어로 그들은 하나님과의 만남을 이루었습니다.
예배의 특징은 예배를 하나님의 종이 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로마인들이 예배를 교환을 바라고 선물을 주는 거래의 개념이라면 기독교의 예배는 하나님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이 때 종은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데 언제/어디서나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섬깁니다.
더 나아가 예배는 하나님을 본받거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모습입니다. 로마종교가 신들을 달래고, 평화를 유지하며, 호의를 얻는 것에 목적이 있다면 기독교는 신의 성품에 참여하고 예수 그리스도처럼 살고 그분을 본받는 것이 목적입니다. 즉 일상에서도 예배하며 언제 어디서나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또한 예배는 복음 사명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로마 종교의 목표가 번영이었고 팍스 데오룸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면 기독교인들은 자신의 거룩한 산 제물로 여기며 하나님과 인간을 화해시키는 영적 제사장으로, 하나님과 사람과 사람이 연합되는 풍성한 공동체로, 우정과 같은 사랑으로, 가족의 친밀함으로,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변화시키는 사명을 이루는 예배를 목적으로 삼았습니다.
이처럼 당시의 기독교는 로마세계의 문화와 종교와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또한 당시의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낯선 모습과 때로는 이상하고 위험한 생각과 행동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 조차도 기독교인들을 매력적이며 인정할 수 밖에 없었던 요인이 여러 가지 있었습니다. 물론 저자는 당시 기독교의 단점과 아쉬운 점도 언급합니다. 완벽하지 않고 완벽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자의 말대로 당시 기독교가 로마를 뒤흔들 수 있는 가장 큰 요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 사로잡혀 삶의 중심이자 외형과 내면의 신앙이었고 행동하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하나님이 사랑으로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기독교는 종교의 한 분파가 아닌 인생의 전부였습니다. 이상하고 위험했지만 작은 기독교 공동체를 통해서 예수님을 보여준 그리스도인들을 매력적으로 여겼습니다. 안디옥에서 교인들이 그리스도인이라 칭함을 받았던 것처럼 말입니다.
결국 이 시대의 교회가 다시 고민해야 할 것은 힘과 능력 그리고 건물의 규모나 세력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복음과 그리스도인의 삶을 통해 기독교의 본질을 보여주는가에 달려있습니다.
[기독교, 로마를 뒤흔든 낯선 종교]라는 책이 바로 그 나침반의 역할을 보여줍니다.
교회를 사랑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기 원한다면 읽어야 책입니다. 목회자는 목회의 본질을 고민할 수 있고 성도들은 신앙의 기본기를 점검하는 책이 될 겁니다.
주일 저녁 책의 소감문을 정리하며 깊은 고민에 빠집니다. 한국기독교의 모습에서 로마종교의 모습이 보입니다. 제발 저의 착각이길 바랍니다...
또 제 자신에 대한 생각을 해봅니다.
나의 삶이 급진적이고 위험하나 매력적인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말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 또한 믿는 자와 만남에서 그들의 생각과 삶을 뒤 흔들어 예수님을 생각나게 하는 인생을 살고 있는지 말입니다. 아직 갈 길 먼 제자의 길이지만 묵묵히 걸어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