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비 땅의 열매
신약학자의 야고보서 강해집이다.
흔히 행함이 있는 믿음에 대한 강조로 인해
마틴 루터도 지푸라기 서신이라고 할 정도로
아웃사이더 서신으로 취급 받았던 야고보서다.
하지만 현재 한국교회의 모습을 보면
그 어떤 성경보다 야고보서가 필요하지 않을까?
오직 믿음에 대해 이야기 하고
믿음 좋은 신자들은 많다.
하지만 믿음은 구호로 전락하고
세상에서는 믿음을 듣지만 보기는 힘들다.
과연 야고보서가 말하는 믿음은 무엇인가?
저자는 행함을 말하기 전에 신자의 정체성으로부터 시작한다.
신자의 정체성이 명확할 때 믿음의 도를 잃지 않고 실천할 수 있다고 말이다.
신자는 주님께 매인자로 주님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결국 믿음 역시 주님을 믿음으로부터 나올 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시험이 와도 유혹의 한복판에서도 경건이 흔들릴 때도 극복할 수 있다.
야고보서에 다양한 윤리적인 측면이 나오지만 결국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에 기반한 믿음은
단순한 관념이 아닌 그리스도안에서 믿음을 가지고 순종할 수 있다.
차칫하면 윤리적인 측면에서 도덕적인 삶이 믿음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저자는 그 모든 중심을 철처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이루어짐을 강조한다.
야고보서가 행위의 서신이라는 오해속에서 야고보서가 믿음을 강조하면서 야고보가 강조한 행함의 정의를 명확하게 내려준다. 그 행위는 ‘착한’, ‘선한’ 행위가 아닌 믿음과 함께 일하며 믿음을 온전하게 하는 ‘행위’임을 말한다.
야고보서가 예시한 아브라함과 라합의 믿음에서 볼 수 있듯이 행위는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그것이 그대로 성취될 줄로 확신한데서 나오는 행위다. 즉 하나님을 믿는 믿음안에서 나오는 행위다. 구원이나 칭의를 위한 행위가 아닌 믿음에 의도된 목적이 이루어지는 행위다. 그러므로 믿음은 행위와 함께 일한다. 더 나아가 이 행위의 원인은 하나님의 열심임을 말한다.
웨슬리안 입장에서 볼때는 약간의 이견도 있지만 기본적인 원리와 원칙에서는 동일하다.
믿음은 하나님이 하시고 행위는 인간이 한다는 이분법적 사고는 저자나 야고보서가 말하는 바가 아니다. 이것은 다른 교단 신학 역시 동일하다.
일관되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그리고 신자를 향한 하나님의 일하심을 말하는 저자의 강해집은 신학이 어떻게 설교에 녹아져서 성경적 설교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교리적이고 윤리적인 측면이 아닌 성경 본문이 말하는 바를 잘 주해한 학자이자 목회자의 설교가 뭔지를 엿볼 수 있었다. 오랜만에 좋은 야고보서 설교를 읽는 즐거움을 경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