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소주제들은 뉴스 등의 미디어를 통해 누구나 한번쯤 접해 봤을 주제들이다. 우리의
일상, 사회, 미래와 깊은 관련 있는 이 주제들에 대해 개론서
같은 책이다. 여러 개념, 사상과 사조 그리고 논쟁과 예측이
편집된 만큼 입문서로서 만족스럽다. 다만 총론에서 각론으로의 진행은 개인의 몫이다. 무엇보다 이 책의 장점이라면 질문들이다. 한 사람을 정의하는 것은
많다. 그 중의 하나가 그 사람이 던지는 질문일 것이다. 질문의
내용이 생각의 깊이와 넓이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책은 생각주머니를 위한 질문들로 그득하다.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 그 과정에서 가지 치기를 하는
생각들… 진짜 공부의 여정을 시작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더군다나
이 책의 끝에는 '더 읽어보면 좋을 책'과 18쪽에 달하는 주석이 선물처럼 안겨 있다.
이 책이 제시하는 열 개의 소주제는 서로 연관되어 있다. 인문사회
분야의 통섭의 토론서로 삼기에도 좋다.
01. 기본소득
2016년 스위스의 기본소득 국민투표가 한동안 화제가 되었다. 스위스 국민은 국민투표를 할 만큼 기본소득에 대한 담론이 이루어진 것인가 싶었다. 그렇다면 부러운 일이었다.
2020년 우리는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전국민이 재난지원금을 받는
경험을 처음 하였다. 이 와중에 기본소득은 다시 정치인들과 학자들에 의해 소환되고 있다. 지금 공적 담론화가 이루어지기 좋은 시기라면 시기일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만약 기본소득 국민투표를 우리나라에서 하게 된다면
명제는 무엇이 될까. 금액? 물론 책의 내용 중 기본소득의
금액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100, 200 등의
돈의 액수를 정하기 이전에 기본소득은 어떤 의미를 가져야 하며 개개인에게 어떤 작용을 해야 하는지가 먼저라고 얘기하고 있다. 개인은 삶의 형태를, 사회는 공동체의 성격과 시스템을 설계해 나가는
과정에서 기본소득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얘기이다. 근본적으로 인간의 노동에 대한 고찰과 생산, 소비 그리고 부의 재분배를 시대에 맞게 정비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02. 공유
아리수가 생수로 적합하다고 해도 요즘 사람들은 생수를 사서 마시거나 정수기를 이용한다.(혹은 끓여 마시거나) 마을 공동 우물터에서 물을 길러 먹던 그 옛날, 물은 공공재였다.
생수를 사서 마신다는 것은 1990년대 초반까지는 생소한 일이었지만
어느덧 다양한 브랜드와 가격을 지닌 소비재로 바뀌어 가고 있다. 생산과 소비의 수레바퀴 위에서 굴러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공재가 설 자리는 어디일까?
공공재와 소비재 사이 어디쯤이면서 사유재산인 존재가 있다. 이것은
신기하게도 값이 올라도, 값이 떨어져도 욕을 먹는다. 바로
부.동.산.
땅 위의 집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생존의 재화이다. 생존이라는
명제를 받아들인다면 투기냐 투자냐 하는 논쟁은 이차적이고 사치스러운 것이 된다.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태동하기 전에는 자연스러웠을 풍경. “수확이
끝난 뒤 들판에 버려진 밀 이삭을 주울 수 있는 권리, 혹은 자신이 소유한 가축들이 휴경지에서 풀을
뜯을 수 있는 권리..”(p.51)에 대한 논의는 땅의 공유와
사유에 대한 고찰의 시작일 수 있다.
또 하나의 공공재, 사회안전망.
그 안전망이 치안에 국한되는 것인지, 경제적 안전망까지인지 그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첫
장의 기본소득과 접점을 찾게 된다. 또한 현재를 관통하여 미래의 공유를 위해 인터넷 세상에서 무엇을 누구와 어떻게 나눌 것인지 정하는 것도 우리의 과제라고
책에서 말한다.
03. 21세기 민주주의
대중과 시민은 모호한 개념으로 민주주의 참여자나 대상으로 쓰이기 일쑤이다.
이 장에서 인상 깊었던 점은 벤자민 바버가 말한 대중과 시민, 각각에 대한 정의이다. 나는 대중인가, 시민인가. 시민이
되기로 한다면 책임과 의무가 따르고 정치적 결과도 감내해야 함을 이 장에서 시사하고 있다. 시민은 할
일도 많고 할 수 있는 일도 많아 보인다. 행정력과 환상적인 콜라보를 만들어 낼 수도 있고 때로는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추첨제’가 민주주의에서 갖는 의의와 기능에 대한 설명도 참신했다. 다만 매니페스토나 시민 권력의 부패 같은 문제가 더 다루어졌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다.
04. 동물의 권리
동물복지 달걀이나 고기는 보통 두 배 이상 비싸다. '어차피
도축 당할 신세인데 방목이 왠 말인가?' 신 포도를 바라보는 여우의 독백을 뇌까렸다. 물론 공장식 목축이나 사육이 환경에 있어 대단히 복잡하고 큰 문제라는 것은 익히 알려져 왔다. 현대의 식육산업으로 야기되는 인간과 동물의 질병, 그리고 환경오염에
대해 채식주의가 문제제기를 꾸준히 해왔다는 것 역시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동물복지라 하면 이런 문제들의
대안으로 육식을 덜하고 산업화되는 목축을 반대하는 차원에서 지역 농장들이 방목을 하는 정도로 생각했으나...
이 장에서 좀 더 근본적이고 철학적인 접근으로 반종차별주의 운동을 소개하고 있으며 윤리적 육류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도 던지고 있다. 인류가 지구에서 생겨난 이래 고기를 이렇게 많이 소비한 적이 있었나 싶다. 그렇다고 인류 전체가 잘 먹는 것도 아니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라는 책에서도 밝히듯이 인류의 절반 정도가 기아나 영양실조,
혹은 결핍 상태이다. 그렇다면 인류의 절반도 채 안되는 인간들이 먹는 고기를 위해 탄소를
써대고 쓰레기를 만들어내고 메탄가스를 뿜어내고 오존에 구멍을 내는데 기여하고 공멸의 길을 향해 달려가야 하는 것일까? 한 점의 고기에 많은 이슈가 걸려 있다. 이 주제는 자본주의, 미래 민주주의와 연관하여 토론하기에 좋다.
05. 트랜스 휴머니즘
SF소설과 영화의 단골 소재인 사이보그는 묘사에
따라 섬뜩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한 존재이다.
트랜스 휴머니즘은 과학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인간 원래의 상태보다 나은 혹은 확장된 존재에 대한 담론이다. '인간은 어디까지 진보할 수 있는가?'가 가장 궁금할 수 있겠다. 책에서 최신 기술에 대한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하고는 있다. 그러나
한 인간이 어디까지 '트랜스'될 수 있는지, 그 인간이 인간인지 아니면 인간이라 불릴 수 없는 그 무엇인지에 대한 논쟁도 빼놓지 않았다. 그리하여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 물음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에 관해 상호주관성에 대한 얘기와 인류가 죽지 않는다면 생식을 멈출까?라는 질문은 흥미로웠다.
이 밖에도 다양한 논쟁점들을 풀어놓았다. 트랜스 휴머니즘이 개인주의적으로
쓰여야 할 지, 사회적으로 쓰여야 할 지 등등.
06. 대안 화폐
2018년 1월, 비트코인 이슈로 한 종편채널에서는 긴급하게 TV토론회까지 했다. 비트코인은 국가가 발행하는 화폐, 그리고 세계 기축통화 역할을 하는
달러에 대해 대역죄를 지은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블록체인이라는 신기술에 대해서 더 알아보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컴맹 수준이라 알아보려 해도 잘 안되는 게 지엄한 현실이다)
그러나 이 장에서 대안화폐와 블록체인 개념을 각각 정립할 수 있었다. 대안화폐는
중앙정부 발행 화폐와 그에 기인하는 경제의 문제점을 보완하고자 나온 것들이고 블록체인은 디지털 경제 민주주의 한 형태일 수 있겠다. 그 둘 사이에서 비트코인과 아류들이 나왔고 이를 투기나 사기에 써먹는 사람들도 있으니 긴급 TV토론에 불려나오는 신세가 된 것 같다.
대안화폐는 이미 우리 일상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온누리 상품권, 경기지역화폐, 성남사람상품권 등이 그 예다. 책에서 더 다양한 대안화페의 종류와 활용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또한 블록체인과 같은 디지털 경제에서의 화폐의 미래는 어떻게 될 지 가늠해 볼 수 있겠다. 여기서 국가의 통제와 개입은 어떻게 전개될 지에 중국의 디지털 위안화를 참조할 수 있겠다.
07. 포퓰리즘
헤게모니, 프로파간다와 같은 개념들에 비해 포퓰리즘은 근본 없어
보인다. 어느날 회자되기 시작하여 현재 정치 상황에서 가장 많이 공격용으로 쓰이는 이 용어의 시작점과
사조들에 대한 설명을 보고 있으니 관연 '포풀루스(Populus: 인민,대중)를 위한 포퓰리즘이 나올 수 있을까 싶다. 인종차별주의를 공공연히
내세우는 트럼프의 포퓰리즘만 봐도 그렇다. 포풀루스가 만들어야 진정 포퓰리즘이 되지 않겠는가? 선거의 장단점으로 점철된 21세기 민주주의와 포퓰리즘의 진정한 이해관계
정립을 위한 좋은 안내가 될 것 같다.
08. 탈성장
화폐를 이야기할
때 마다 드는 의문점, 마구 찍어내는 이 돈들의 진짜 가치는 무엇인가?
그 귀착점은 어디인가이다.
성장 역시 마찬가지이다. 성장의 진짜 가치는 무엇이고 무한 성장의 결말은 무엇인가?
왜 아홉 시
뉴스에 수출 증가율과 국민소득 몇 만 불은 지겹게 나오는데 지니 계수는 알려주지 않는 걸까? 모든 국가가
국민소득 3만불을 넘길 수는 없는데 왜 모든 국가는 매년 %의
성장의 압박을 전지구적으로 받는 걸까? 이 장에서는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동화의 허구성을 들여다 보기
위한 보다 넓고 긴 시각을 제공한다. 가짜 뉴스를 거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올바른 뉴스를 찾는 것도 중요하다는
걸 일깨워준다.
또한 저성장
속에서 사라져가는 일자리와 임금노동, 잉여 시간에 대한 고찰을 통해 탈성장에서 어떻게 해법을 찾을 지
생각하게 한다. '탈성장'이라는 주제는 기본소득과 공유라는
주제를 다시 한번 소환한다.
09. 페미니즘
내 주위에는
페미니즘을 시대에 뒤떨어진 학문으로 치부하는 사람도 있다. 적어도 우리나라를 비롯 OECD국가들 정도면 성평등이 이루어져 페미니즘은 필요 없다는 거다. 오히려
역차별을 걱정해야 한다면서… "바보야! 문제는 바로
그거야." 남자든 여자든 동성애자든 트렌스젠더든 그 어떤 이유에서도 차별을 받으면 안된다고
생각하면 페미니즘을 알아야 한다. 한 때 페미니즘 책 좀 읽었다는 나도 LGBTQI+OC 라는 용어를 이 책에서 처음 보았다. 차별과 권력의
문제는 페미니즘과 불가분의 관계다. 권력은 위력에 의한 비위 문제를 야기하기 마련이다. 권력과 지배가 없는 사회가 가능한가? 이 이상주의적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페미니즘의 진로가 될 것 같다.
10. 플랫폼
자본주의
우버화로 대표되는
플랫폼 자본주의는 대세가 되어가고 있다. 그만큼 전통적 경제 주체들과의 갈등도 심하다. 미국에서는 우버가 택시를 이긴 듯 보이고 우리나라에서는 택시가 우버도 이기고 타다도 이겼다. 어느 나라에서는 아슬한 공존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버도
택시도 아닌 제3의 플랫폼이 새로운 승자가 될 지도 모른다. '타다'와 택시의 갈등을 보면서 느낀 것은 '을'들의 전쟁에 승자도 패자도 없다는 것이다. 저임금의 피고용인과 불안정한
수익의 자영업자들의 싸움에 가장 큰 피해자는 당사자들이다. 자본과 기술은 계속 혁신적인 플랫폼 비즈니스를
만들어 낼 것이고, 소비자들은 언제고 갈아탈 준비가 되어 있다. 책에서도
지적했다시피 비정규직의 증가만큼이나 플랫폼 자본주의는 사회안전망을 해체한다. 임금노동자와 자영업자의
경계도 모호해졌다. 그만큼 새로운 시스템과 안전망이 필요하다. 이와
같이 혁신적 비즈니스의 이익 뿐 아니라 그에 따른 파동을 다각적으로 생각케 하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다. 어떤 사회적 인간이 인간적 사회를 만드는 것일까? 혹은 무엇이 필요할까? 세상과 다가오는 미래를 좀 더 잘 살기 위해서
이 책에서 다룬 주제들을 교양이 아닌 필수과목으로 여기고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일부 주제들만
읽어도 서로 연관성이 있어 생각을 나누기에 무리 없을 것 같다. 왠만한 사회문제는 어차피 서로 다 얽혀
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