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한때 역사학자를 꿈꾸며 사학과를 진학했던 현실의 벽앞에 진로를 틀었지만 여전히 나는 역사를 사랑한다. 동시에 신화를 동경한다. 겉보기에는 사실과 허구라는 상반된 영역처럼 보이지만, 이 두 세계는 늘 맞닿아 있다고 느껴왔다. 『신화로 보는 세계사』는 바로 그 지점, 역사와 신화가 갈라지기 이전의 인간 이야기를 섬세하게 복원해낸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은 지식을 전달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내가 왜 역사를 좋아하고 왜 신화에 끌려왔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 책은 세계사를 연표나 사건 중심이 아니라, 문명별 신화를 축으로 풀어간다. 그리스·로마, 북유럽,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문명에 이르기까지, 각 문명의 신화를 소개하고 그 신화가 만들어진 배경과 당시 인간의 삶, 정치와 종교, 권력 구조까지 촘촘히 연결한다. 신화는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결국 제도와 질서, 국가와 문명을 만들어낸 근원이었음을 이 책은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또한 컬러풀한 다양한 삽화가 삽입되어 있어서 이야기를 읽는 즐거움은 배가 된다.
특히 깊은 인상을 남긴 부분은 이집트 문명과 신화다. 영화로도, 다양한 책을 통해서도 수차례 만나본 이집트 문명 과 신화임에도 그 세계는 여전히 다 담을 수 없을만큼 방대하다. 나일강의 범람에 생존을 맡겨야 했던 이집트인들에게 세상은 늘 불확실했고, 죽음은 삶과 분리되지 않은 또 하나의 세계였다. 오시리스의 죽음과 부활, 이시스의 헌신, 호루스의 왕권 계승 신화는 단순한 신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왕이 왜 신의 대리자인지, 왜 죽은 뒤에도 삶이 이어진다고 믿어야 했는지를 설명하는 서사였다.
이집트인들이 미라를 만들고 피라미드를 세운 이유 역시 이 신화적 사고에서 비롯된다. 육체가 보존되어야 영혼이 돌아온다는 믿음, 인간의 삶이 신의 질서 안에 있다는 확신은 문명의 기술과 예술, 정치 구조까지 결정지었다. 이 책은 이집트 신화를 통해, 한 문명이 왜 ‘죽음 이후의 세계’를 그렇게까지 집요하게 탐구했는지를 이해하게 만든다.
나는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것을 좋아한다. 설명되지 않는 영역, 신들의 이야기, 논리로 닿지 않는 질문 앞에서 인간이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왔는지에 늘 마음이 끌린다. 그래서 미스터리한 이야기, 특히 신화에 더 강하게 이끌린다. 신화는 초자연적인 존재를 다루지만, 그 안에는 언제나 너무나 인간적인 두려움과 소망이 담겨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다시 떠올린 질문은 이것이다. 인간은 왜 신화를 만들어냈을까. 신화는 무지를 감추기 위한 거짓이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세계를 견디기 위한 인간의 지혜였다. 자연재해, 죽음, 전쟁, 권력처럼 설명할 수 없는 거대한 힘 앞에서 인간은 이야기를 만들었고, 그 이야기를 통해 세상에 의미를 부여했다. 그렇게 신화는 인간이 세계와 타협하는 방식이자, 두려움을 질서로 바꾸는 언어가 되었다.
그렇다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신화를 만들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을까. 오히려 우리는 지금도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과학기술에 대한 절대적 신뢰, 성공 신화와 자기계발 서사, 영웅처럼 소비되는 인물들, 불멸을 꿈꾸는 인간의 욕망까지. 형태만 바뀌었을 뿐, 인간은 여전히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싶어 한다.
『신화로 보는 세계사』는 과거의 신화를 통해 현재의 우리를 비추는 책이다. 역사와 신화는 결코 분리된 것이 아니라,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두 개의 언어임을 이 책은 조용히 증명한다. 역사를 사랑하는 사람, 신화를 동경하는 사람, 그리고 아직 설명되지 않은 세계에 마음이 움직이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분명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