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에티켓』 — 롤란트 슐츠 지음, 노선정 옮김 (스노우폭스북스)
맡은 직이 있는지라 죽은 이들, 또는 죽어가는 사람들의 곁을 지켜본 적이 많다. 손도 잡았고 숨소리도 들었다. 그래서 죽음을 자주 마주했다고 생각했다. 착각이다. 죽음을 바깥에서 봤을 뿐이다. 죽어가는 일이 그 사람 안에서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한번도 본적이 없다.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가 거기에 있다. 독일의 저널리스트인 그는 뮌헨대 의대 도서관에서 죽음에 관한 자료를 찾다가 죽어가는 과정을 다룬 글이 고작 9페이지 밖에 없다는 걸 발견한다. 누구나 반드시 지나가는 문인데, 그 문 안쪽을 들여다보는 지도가 없었다. 그래서 직접 그린다. 의사, 간호사, 장례지도사, 법의학자, 화장장 직원을 수년간 따라 다니며 취재했다. 독일의 퓰리처상이라 불리는 테오도어 볼프상을 받은 리포터의 글이 우리가 가장 피하고 싶은 주제를 말하고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포인트는 시점 포인트 오브 뷰이다. 죽은 사람이 그 누구도 아니고 나 이다. 책을 읽는 독자가 지금 진단을 받았고, 임종을 향해 가고 있다고 상정한다. 엄청 불편해진다. 그 불편함이 이 책을 덮고 있다. 죽음을 남의 일처럼 밀어 넣었던 안전함이 이제 눈앞에서 현실로 어른거리며 무너지기 시작한다.
죽기전에 꼭 해야 할 말로 다섯 마디가 나온다. "용서할게.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 잘 있어"(71쪽) 그러면서 대못을 박는데, 단 몇시간 만에 평생의 관계를 정리할 수 있다는 건 몸이 건강할 때나 하는 생각이란다. 죽어가는 일은 한 사람이 평생 마주한 가장 고된 노동이라는 어느 임종 경험자의 말도 그대로 옮겨 적는다(71쪽). 죽음에 대한 어떤 미화도 없다. 아름답지 않다고 힘들고 아프다 말한다.
나의 심장이 멎은 뒤로도 책은 멈추지 않는다. 이제부터가 본방이다. 죽음은 스위치를 켜고 끄듯 한순간에 일어나지 않는다. 마지막 호흡과 적막 사이, 마지막 박동과 침묵 사이의 흐릿한 경계를 따라간다. 그 다음엔 사후의 몸, 검시, 관, 그리고 화장장으로 이어진다. 천장 낮은 창고에 쉰개 남짓한 관이 줄지어 있고, 손잡이와 십자가가 전부 뜯겨나간 맨 나무 상자들이 메트로놈 같은 리듬으로 화로에 들어간다.
매번 화장터에 가본 입장에선 외국적인 분위기가 느껴지지만 멀리 느껴지진 않는 그런 풍경이다.
이 책을 죽음 안내서라 하면 절반만 맞다. 저자가 던지는 질문은 따로 있다. 죽음을 설명하려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말은—종교든 과학이든—결국 죽음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90쪽) 죽음의 디테일을 끝까지 따라가다 보면, 그 끝에서 돌아보게 되는 건 결국 지금 이 삶이다. 화장터의 불꽃까지 묘사한 디테일 말하는 쪽은 다른 쪽을 말한다.
흥미롭게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말한다. 내가 이 과정을 다 안다는 식으로 말한다. 그러면서 죽어가는 일은 아는 것과 반대에 있다고 말한다. 죽음에 대한 생각은 이성의 영역이다. 죽어가는 것은 영혼의 과정이라 말한다. 전형적인 사망자의 모습을 그리려 따뜻한 가족과 친구가 곁을 지키는 묘사를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음도 고백한다. 혼자 살다 혼자 죽고, 울어줄 사람 하나 없이 작별 인사도 영결식도 없는 소리 없는 화장이 늘고 있다는 장례 전문가의 증언도 적어둔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죽음도 많다고 알린다. 그러며 죽음으로 인해 남겨진 이들에 대한 배려까지 보인다. 슬픔에 무너졌을때 물을 마시고, 밖에 나가고, 씻고, 무엇이든 먹고, 무엇이든 돌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지침을 보낸다.
그렇기에 이 책은 죽음을 멀리 젖혀두고 있는 사람에게,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냈거나 진행중인 사람에게 권한다.
다만, 이 책은 위로의 내용하고는 거리가 멀다. 사실대로 보여주기 때문이지만, 오히려 그것이 어떤 위로보다 크게 다가온다.
이 책을 마무리 하며 고민을 해본다. 내가 맡았던 장례식, 그들에게서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다른 면에서 감이 잡힌다. 하지만 여전히 잘 모르겠다. 어쩌면 죽음에 대해 알 길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이 책이 말하고 싶은 예의 바름이 아닐까 에티켓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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