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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톨스토이 단편집
  •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 17,820원 (10%990)
  • 2026-05-27
  • : 3,370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노우폭스북스.「톨스토이 단편집」 — 레프 톨스토이 지음


제목 아래에 조그맣게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라는 톨스토이의 고민이 적혀 있다. 톨스토이 하면 생각나면 유명한 글인 추운 겨울 길에 쓰러진 천사를 거둬들이고 하는 그 이야기 그 제목을 생각하며 책을 폈다. 정작 그 제목의 그 단편은 이 책에 없다.

비슷한 느낌의 사랑이 있는 곳에 신이 있다 한편이 따뜻한 우화로 끼워져 있다. 나머지는 무게가 장난이 아니다. 


첫장에서 몇장을 넘기면 욕망에 끝내 무너지는 귀족이 나온다. 한장 더 가면 야간 열차에서 아내를 칼로 찌른 남자가 자기 입으로 그 밤을 복기한다. 또 더 가면 평생 성자가 되려했던 수도사가 하룻밤 사이에 자신의 모든 것을 잃는다. 따듯한 질문과 고민이 제목 아래 있는데 막상 안에는 톨스토이가 평생 자기를 들여다보며 쓴 가장 어두운 작품들이 채워져 있다. 이 느낌이 이 책의 정체라 본다. 나는 그 간극이 거짓광고는 아니라 생각한다. 톨스토이라는 저자에게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의 진짜 답은 따뜻한 민화가 아니다. 어두운 단편들 안에 스며들어 있다.


제목 부터 맘에 드는 세편을 골라보았다.


「악마」 예브게니라는 청년이 시골 영지를 일으키려 내려왔다. 빚을 갚기 전엔 결혼도 안하겠다고 자기와 약속했다. 그런데 마부를 시켜 마을 여인 스체파니다를 헛간으로 부른다. 처음엔 그저 몸의 대화를 위한 건가 생각했다. 빚을 갚고 좋은 집안 처녀와 결혼한 뒤에도, 그 여인이 들판에서 일하는 모습만 보면 그의 안에서 무언가가 다시 쿰틀거린다. 누르면 누를수록 커져간다. 그는 마지막에 권총을 든다. 놀랍게도 이 결말은 두가지다. 한 판본에선 자기를 쏘고, 다른 판본에선 그녀를 쏜다. 어느 쪽이든 욕망이 한사람을 끝을 내버린다.

이 작품을 톨스토이는 22년 동안 책상 서랍에 넣어뒀다. 살아생전 끝내 발표하지 않았고, 죽은 뒤 부인이 발견해 1911년에야 세상에 나왔다. 왜 숨겼을까? 해설은 가장 고심한 흔적을 얘기해 준다. 톨스토이 자신이 청년시절 영지에서 한 농촌 여인과 관계를 맺었고, 그것을 평생 부끄러움으로 안고 살았다. 그렇다면, 「악마」는 단순 소설이 아니다. 자신의 치부가 들킬까 싶어 22년의 세월을 감추어둔 고백서에 가깝다.


「크로이체르 소나타」. 한 남자가 야간열차에서 처음 만난 승객들에게 자기가 아내를 죽인 이야기를 한다. 음악가가 집에 드나들었고, 질투가 자라난다. 영지 일로 떠나 있는 사흘동안 그 확신이 단단해진다. 새벽 열차로 돌아와 발소리를 죽이고 침실 문을 연다. 단검을 든다. 아내는 도망치지 않고 그를 똑바로 본다. 찌른다. 이후 분노도 질투도 다 빠져나간 자리에 공허만 남았다 말한다. 죽어가던 아내의 마지막 말은 참 쓰디쓴 한약을 먹고 난 후에 떫은 느낌이다.


"당신은 한 번도 나를 본 적이 없어요."(p.227)


부부가 십 몇년을 한집에서 살았는데 한번도 본적이 없다. 그가 본것은 아내란 인간이 아니라 아내를 향한 의심과 충족되지 못한 소유욕의 덩어리다. 아는 것으로 부터의 자유에서 크리슈나무르티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 우리는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에 대한 이미지와 관계 맺는다" 톨스토이는 70년 먼저 앞서 그 의미를 칼이란 이름으로 써낸다. 


「신부 세르기우스」 카사츠키라는 사내가 세속의 모든 것을 버리고 수도원에 들어가 신부 세르기우스가 된다. 엄격한 생활을 이어갈수록 이름이 바깥으로 퍼진다. 병든 자, 죄인, 슬픈 자들이 그의 축복을 받으러 줄을 선다. 암자 앞에 작은 마을이 생긴다. 그러던 어느 밤, 축복을 받으러 온 여인과 단둘이 남고, 그의 버린 삶을 또다른 의미로 버리게 된다. 평생 쌓은 기도와 금욕이 하루밤에 버려진다. 

여기서 끝났다면 흔하디 흔한 타락한 성직자 이야기다. 톨스토이는 이에 더 앞서간다. 수도복을 벗고 떠돌던 세르기우스가 어린 시절 모두가 얕잡아 보넏 파쉔카를 찾아간다. 영적 명성도 없고, 교회에 못간 지도 오래고, 밤에 그저 '주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한번 기도 올리고 잠드는 늙은 여인이다. 남편 빚을 갚고, 손자들 옷을 꿰매고, 피아노 과외로 식구를 먹인다. 세르기우스는 그 삶을 가만히 들여다 본다.

평생 성자가 되려 노력한 자신보다, 성자 같은건 안중에도 없고 하루를 살아내는 이 여인이 신께 더 가까이 있다는 걸 그제서야 깨닫는다.


톨스토이가 말하고 싶은 부분이 여기에 있다. 성자가 되고 싶다는 갈증도 욕망이다. 더 거룩해 보이고 싶고, 더 인정받고 싶고, 사람들이 줄 서서 찾는 사람이고 싶은 마음, 그게 「악마」의 정욕이나 「크로이체르」의 소유욕과 뿌리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드러낸다. 이 세작품을 이어서 보면 톨스토이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 예측해 볼 수 있다. 남을 그리려고 한게 아니다. 욕망의 톨스토이, 소유와 질투의 톨스토이, 영적 명성을 탐한 톨스토이를 차례 차례 도마위에 올려놓고 살을 도려낸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의 답을 따뜻한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인 자신 안의 가장 추한 모습을 깊이 들여다 보는데서 찾는다.


번역을 맡으신 분은 안진환이란 분이다. 19세기 러시아 단편 특유의 긴 호흡을 살리면서도 독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적어 문장에 군더더기가 없음이 보인다. 다만 이전 까지 읽었던 따뜻한 교훈을 기대한다면 어 이거 뭐지? 하고 의아해 할 수도 있다.  반대로 선해 보인다는 자기 안의 거짓이 느껴지는 이들, 내가 누군가를 제대로 보고 있는 건지 그 사람의 진실을 못보는 건지 한번 쯤 의심해본 사람에 대해 고민한 이에게 더욱 권해보고 싶은 책이다.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는 아내의 얼굴을 잠시 보고 나도 보게 된다. 한번 읽어 보시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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