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네가 살아 있었다면, 분명 엄청난 작가가 되었을 것이다.
13살 소녀의 감성, 소녀의 깨달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안네는 혜안을 가진 소녀였구나, 를 알게 된다.
안네를 안 것은 안네만한 소녀일 때지만, 안네의 일기에 더 큰 감동을 느끼고
제대로 이해하게 된 건 성인인 지금인 것 같다.
어릴 때 어른들이 '꼭 읽어야 하는 책'이라며 쥐어준 안네의 일기.
아무도 나를 위협하지 않고 불행하게 만들지도 않는 순탄한 삶을 살던 그때는
안네의 감성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소녀가 썼다는데도 그저 어렵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세상을 사는 데 왜 '견딘다'는 표현을 쓰는지 이해하게 되는 사회인이 되었을 때는,
안네를 다시 찾게 되었고, 그제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안네의 일기를 영화화한 1930년대 작품을 보면,
나치에게 발각된 상황에서 안네의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지금까지 우린 2년 동안 두려움 속에서 살았지만, 이제 우린 희망 속에서 살겠구나"
희망이 없는 것 같고, 불안할 때 나보다도 더 극한 상황을 이겨냈던 용감한 누군가,
먼저 견뎌낸 누군가의 '힘껏 당겨주는 것' 같은 한 마디가 절실한 상황에
나는 안네를 다시 찾았다.
그리고 이 책을 만났다.
숨어 있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일상 속에서도
안네는 희망을 발견했고, 웃었고, 그 순간을 즐길 줄 알았다.
그 어렵고 대단한 힘이 이 어린 소녀한테 있었다는 게 그저 놀랍고,
그런 총명한 그녀의 삶이 너무 짧았다는 게 안타깝다.
하지만, 안네는 안네의 마지막 말처럼 영원히 살아 있다.
"생명이 다한 후에도 나는 영원히 살았으면 좋겠어요"
천천히 음미하며 읽을 수 있고, 일기 속에서 발견하는 안네의 주옥 같은 말들이 많아서 좋다.
여운이 아주 길게 남는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살아 있고, 자연의 소리를 기억하며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았기에 오늘을 살고, 내일을 기대한다"
"사람들은 우울해하는 걸 전염병으로 여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누가 아픈 것것보다 우울해하는 걸 더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결코 희망을 잃지 않을 것이다.
아름다운 색깔들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핍박이라는 이름의 어두운 그림자에 절대로 지지 않겠다.
악한 것은 결코 생각하지 않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