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고사리책장
  • 인간 존재의 의미
  • 에드워드 오스본 윌슨
  • 17,550원 (10%970)
  • 2016-07-22
  • : 1,067



에드워드 윌슨의 정수를 모은 에센셜 시리즈 네 권 중 첫 번째 저작이다. ‘지구의 절반을 국립공원으로 만들자’는 주장으로 유명한 〈지구의 절반〉을 제외하면, 인간의 존재 의미가 무엇인가 질문하는 이 책이 가장 흥미롭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본성을 꺼내오는 건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잔혹하고 탐욕스러운지 주장하는 쪽이다.(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을 떠올려보자) 문명사회라는 틀을 벗겨내면, 극한 상황에 몰리면 누구든 야생동물들처럼 욕망과 본능만 쫓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생물학은 ‘사회성’ 또한 자연선택을 통한 유전적 성질임을 주장한다. 이분법적으로 이기심과 이타심 중 하나를 택하는 대신, 개체적 본능(이기심)과 집단적 본능(이타심)이 영원히 내면에 존재하고, 충돌하기 때문에 인간이 근원적인 모순을 갖는다고 본다. 

인간의 근원적 수수께끼를 알게 되었지만, 그래서 안타깝게도 해결된 건 없다. 여전히 우리는 모순을 해결할 수 없고, 그저 모순을 인정하고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결국에는 타고난 불안을 지닌 채 살아가고, 아마도 그것을 창의성의 주된 원천으로 여기면서 기쁨을 얻는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38쪽) 윌슨이 보기에 과학이 밝혀낸 이 모순은 ‘자기이해’의 차원에서 중요하다. 자기이해에 토대를 둔 지혜만이 창조성과 다양성이 자라날 대지다. 고갱의 그림, ‘우리는 어디서 왔고,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이 떠오른다. 윌슨은 결국 창작 예술과 인문학에게 자리를 남겨놓는다. 

 

이 책 뿐만 아니라 사회생물학에서 느끼는 묘한 감정이 있다. 명쾌하지만, 명쾌해서 모호하다. 윌슨은 생물종으로서의 인간 존재를 해석하면서, 호모 사피엔스와 다른 생물종의 분명한 ‘차이’를 드러낸다. 인류의 진사회성이 다른 생물종의 사회적 행동과 닮았다고 말하면서도 8장에서 윌슨은 ‘개미로부터 도덕적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단호하게 ‘아니다’라고 답한다. 또한 고도로 사회적 동물이라는 점에서 개미와 동일한 초유기체로 인간사회를 설명하려는 시도에 대해 비판한다. ‘자연도/개미도/유인원도 이러하기 때문에, 자연의 일부인 인간도 이런 성질을 갖는다’는 수준의 서술이 익숙했기 때문에, 윌슨의 이러한 단호함이 인상적이었다. 한편으론 사회생물학이 갖는 위계성, “가장 복잡한 수준의 진화”는 지구 상에서 단 한 차례, 인간종 뿐이며, 이타적 분업을 하는 계통 중 “고도의 지능”까지 갖춘 것은 호모 사피엔스 뿐이라는 입장이 주는 불편함같은 것도 있다. 

명백한 과학적 사실에서 위계를 느끼고 꺼림칙해 하는 것은 비과학적인가? 주류 과학이 갖는 인간중심주의는 비판해야 하는가? 윌슨은 4장에서 인간중심주의조차 개인과 집단 생존에 기여해왔다고 설명해버린다... 지독한 사회생물학자... 사회생물학에 대해(정확히는 인간중심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느끼는 이 묘한 감정 때문에 〈인간 존재의 의미〉라는 제목과 다르게 이 책을 끝까지 읽으면서도 인간 존재의 의미가 무엇인지 해소되지 않았다. 윌슨이 출구를 열어두었듯이, 독자 또한 생물종으로서의 인간 특성만으로 모든 실존적 의미를 결론짓지 않는 수밖에 없다.


편집 상의 이야기를 해보자면, 이 책은 주석이 없다는 점이 특징이다. 각주, 미주, 자료의 출처표기도, 옮긴이주도 없다. 주석의 기능이 자료의 신뢰도를 부여하는 것이라면, 저자의 명성과 책의 컨셉에 따라 과학교양서라고 해도 반드시 까다로운 주석 표기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고 볼 수 있다. (주석 표기가 없더라도 진위여부 확인을 위한 편집자의 별도의 노력은 필요하겠지만.) 

전문 과학서적이라기보다는 과학자가 쓴 에세이에 가깝다. 윌슨은 오랫동안 과학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한 학자다. 이 책에서 독자가 주목할 것은 이론이 얼마나 진리에 가깝고 학계에서 보편적으로 통하는지 같은 정합성이 아니라 저자의 메시지다. 철학자가 철학의 시선으로 인간을 정의하고, 심리학자가 심리학으로 인간 정신을 분석하듯이 윌슨도 생물학자의 시선에서 인간을 바라본다. 윌슨의 학문적 지식을 바탕으로 인간에 대해 폭넓게 풀어놓는 형식이다. 생물학자의 관점이 어떤 배경과 관심사 위에 구성되었는지 친절하게 알려주면서, 독자에게도 과학을 통해 을 활용하길 제안한다. 개미의 일생이나 미생물의 특징을 이해하도록 만드는 게 책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윌슨의 이야기를 차분히 따라가면 된다.

윌슨은 한국 독자에게 ‘통섭’이라는 키워드, 사회생물학자 조천호 박사의 스승 등으로 유명하다. 따라서 세밀한 뒷받침 없이도 그의 글은 어느정도 설득력이 있다. 독자가 이 책에서 바라는 것도 생물학 정보보다는 지성의 통찰 정도일 것이다. 책의 전체적인 편집도 이 책이 과학적 정보를 전달하는 게 아니라 통찰을 주는 교양도서에 가깝다는 것을 충실하게 어필하고 있다. 내용 면에서도 주석이 없기 때문에 시선의 머무름 없이 유려한 읽기가 가능하다. 

반면 옮긴이의 말이 가장 앞에 위치하는 것은 추천사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옮긴이가 과학 전문 번역가이기는 하나 내용 자체는 요약과 해설 수준이다. 편집자가 조금 더 노력해서 추천사를 받았으면 어땠을지 아쉽다.


끝으로 과학교양 분야 베스트셀러를 떠올려봤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디플롯, 2021)이 이 책과 굉장히 비슷하다. ‘이타적 개체가 많은 집단이 이기적 개체가 많은 집단보다 생존에 유리하다’는 주장을 중심으로 진화생물학(사회생물학) 이론을 다룬다는 공통점이 있고 심지어 표지 일러스트도 둘 다 엄유정 작가의 그림이다. 표지를 한가지 색으로 통일한 것도, 사이언스북스의 에드워드 윌슨 시리즈를 철저하게 모방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단순하게 그 책의 성공요인을 따질 수는 없겠으나 핵심독자층을 생각해보면, 독자들에게 익숙한 스테디셀러를 후광으로 가져오는 영리한 표지디자인처럼 보인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2021년 출간 이후 10만부가 팔렸으며, 연간 베스트셀러에도 이름을 올렸다. 출판에는 경쟁작이 없다, 유사도서가 성공하면 내가 출판하려는 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말이 생각나는 사례다.


그 갈등은 우리의 마음속에서 서로 싸우는 선과 악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조건을 이해하는 데 필요하고, 종의 생존에 필수적인 생물학적 형질이다. (…) 감정의 불안정성은 우리가 계속 간직하기를 바라야 하는 특성이다. 그것은 인간성의 핵심이며, 우리 창의성의 원천이다. 우리는 격변에 대비된 더 합리적인 미래를 계획하려면 진화적 및 심리학적 용어로 자신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더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법을 배워야 하지만, 인간 본성을 길들일 생각은 하지 아예 하지 말자. - P202
우리는 인간중심주의에 중독되었다. 자기 자신과 동족인 인간들에게 한없이 빠져들도록 되어 있다. 인간중심주의-우리 자신에게 매료되는 습성-의 기능은 사회적 지능을 갈고닦는 것이다. 인간은 그 기능 면에서 지구의 모든 종 가운데 가장 뛰어나다.
우리는 어느 한족 힘을 사회적 및 정치적 불안의 이상적인 해결책으로 삼을 가능성은 적다. 개체 선택에서 비롯된 본능적인 충동에 완전히 내맡긴다면, 사회는 해체될 것이다. 반대편 극단인 집단 선택에서 비롯된 충동에 굴복한다면, 우리는 천사 같은 로봇이 될 것이다. 거대해진 개미와 다름없어질 것이다. 우리는 결국에는 타고난 불안을 지닌 채 살아가고, 아마도 그것을 창의성의 주된 원천으로 여기면서 기쁨을 얻는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 P38
과학과 기술은 모든 문명사회, 하위문화, 사람을 가릴 것 없이 어디에서든 똑같은 모습일 것이다. 스웨덴, 미국, 부탄, 짐바브웨는 똑같은 정보를 공유할 것이다. 계속 거의 무한정 진화하면서 다양해질 쪽은 인문학이다.- P64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