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치된 도시에서 길찾기 / 전현우 / 민음사 / 2022년 12월 / 17,000원
1. 기후위기를 건너는 교통 철학서
새빨간 손바닥 크기의 판형과 『납치된 도시에서 길찾기』라는 제목은 신비감을 부른다. 아포칼립스 장르 소설이 떠오르는 외형과 달리, 이 책은 이동의 위기를 탐구하는 철학서다. 현대 도시의 효율적 이동은 ‘교통’으로 이름한다. 교통은 전세계적으로 탄소배출 감축에 실패한 부문이다. 인간의 조건과 자연조건의 불일치가 바로 이동의 위기다. 저자 전현우는 데이터와 현장연구를 통해 자동차가 걷기 공간을 납치한 ‘자동차 지배’ 현상을 목격한다. 자동차 지배는 기후위기만이 아니라 대도시의 죽음의 위기를 부른다. 논증을 따라가다 보면 삶을 풍요롭게 하는 이동행위는 자동차가 아니라고 할 수밖에 없다.
저자는 넓은 녹지와 보행이 주는 쾌적한 이동을 ‘자기 가치감(self-respect)’이라는 윤리학적 개념으로 엮어낸다. 탄소중립 선언 이후 비판 없이 수용해온 선진국의 도시 모델, 파리의 ‘15분 도시’에 한국의 조건과 맥락도 흥미롭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어떻게 이동할 것인가’로 바꿔낸 철학서로, 다른 어느 곳도 아닌 2022년 한국이라는 시공간에서, 기후위기와 철학의 접합을 성공했다. 출판시장의 수많은 기후·환경도서 사이에서 분명한 위치를 갖는다.
2. 집필과 편집 과정 – 교류
일반 독자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책인 동시에 저자에게 새로운 지식 생산 과정을 제공하는 책이다. 이 책의 ‘감사의 말’에서 저자 전현우는 구체적으로 개인적 일화를 추가하고 용어를 줄이자는 편집부의 개입, 그리고 다른 저자의 서평 덕분에 책을 완성했다고 밝힌다.
민음사 탐구 시리즈는 2022년 시작한 인문학 총서로, 원고 집필 단계에서 저자들을 모아 학술대회, 초고 독회를 열었다. 각 권의 저자는 철학, 문화비평, 정치학, 과학기술 등 다른 분과로 구분되지만, 시대적 감각은 동일하다. 폐쇄적인 학계 밖에서 교류하며 단행본만의 생기를 만든다. 새로운 탐구주제를 넘어, 새로운 탐구방법을 제시하는 인문학 총서 기획이라고 볼 수 있다. 편집자의 뚜렷한 세계관과 역량이 돋보인다.
기존 연구방식에 한계를 느끼는 연구자의 흥미를 끄는 요소이기 때문에 저자 섭외 단계에서도 긍정적으로 고려될 가능성이 크다. 독자와 저자, 저자와 저자 사이를 적극적으로 잇는 출판 과정이 실험에서 그치지 않길 바란다.
3. 핵심 독자층에 따른 보완점
핵심 독자층은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전현우는 『거대 도시 서울 철도』로 2020년 한국출판문화상을 받았고, 교통, 철도 마니아층 사이에 알려진 필자다. 이 책이 다른 제목이나 논문이었더라도 구매했을 독자들이다. 그러나 이들만 독자로 한다면 손익분기점을 넘기기 힘들다. 이보다 더 확실한 소비자는 출판사의 충성 독자층이다. 독서를 좋아하고, 어려운 책도 기꺼이 사 읽는 독자층이다. ‘새로운 세계를 보는 새로운 세대의 시각’이라는 탐구 시리즈 슬로건에 기꺼이 응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환경 분야의 독자층은 저자가 출간 이후 가장 활발하게 홍보하며 책의 내용을 알릴 잠재적 독자층이다. 이 책은 검색이나 표지로는 기후환경도서로 묶이지 않기에 적극적인 홍보가 요구된다. 저자와 편집자, 도시정책, 녹색교통운동 전문가의 토론, 시민사회와 연결되는 시의성 있는 행사로 기후·환경 분야 도서로의 입지를 만들 수 있다.
이 책은 신선한 주제, 실험적인 서술로 독자의 지구력을 요구한다. 핵심 독자층을 고려했을 때, 가독성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경부고속도로, 분당 서현역, 화성 공업단지까지 직접 걸으며 관찰하는 탐구가 강점인데, 아쉽게도 현장감을 살리지 못한다. 구체적인 현장 사진으로 독자의 이입 요소를 보완하고 기대에 맞는 독서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 사진을 보완한다면, ‘학술서와 대중서로 양분된 독서 시장에 다리를 놓는 시도’라는 기획 의도에 맞는 인문학책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