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9 참사 다음주 근무하는 곳에서 일어난 한 학생의 비보를 전해듣고 집에 도착한 날, 아내의 지인이 선물로 보내준 '찬란한 타인들' 책이 식탁에 올려져 있었다. 평소 소설을 거의 읽지 않는 나였지만, 여러가지 어려운 상황 속 절묘한 타이밍에 나에게 오게된 이 책은 작가의 말 중 '내가 받아들여야 했던 숙명과 내가 닿았던 우연이 빚어낸'이란 말이 절묘히 맞아 떨어진 것 같다고나 할까.. 마치 누군가가 나에게 보내어준 어떤 위로의 편지 같았다. 그럼에도 바로 책을 읽지 못하였던 것은 비보와 관련해 내가 해야했던 일이 있었고 그러한 과정 중 마음에 다양한 이유로 분노와 괴로움이 소용돌이 쳤기 때문이다. 일요일 오전 7시에 이와 관련해 해야할 일을 마치고 돌아와 지친 몸과 마음에 잠이 들어 저녁 무렵 잠이 깬 후 나만의 스트레스를 푸는 루틴으로 넷플릭스를 볼까 유투브의 웃긴 영상을 볼까 아니면 '찬란한 타인들' 책을 읽을까 고민하다 책을 들고 방바닥에 널부러져 책을 읽기 시작했다. '햄튼 샌드위치 가게'를 읽기 시작했는데, 읽기 시작했다는 순간에 이야기는 마쳐져 있었다. '이렇게 짧다고?' 처음 들었던 생각였다. 그리고 그 짧은 이야기 속에 담겨 있었던 두번 정도의 비틀어진 반전들로 뭔가 묘한 감정과 기분이 들었다. 마치 작가가 가볍게 내 뒤통수를 치면서 '이럴줄은 몰랐지?'라는 느낌이랄까.. 아무튼 이게 뭐지?란 느낌 속에 계속해 다음 이야기들을 읽어 나갔다. '3개월의 윌리,' '유의미한 타인들,''비밀을 지키는 법,''여자가 무서워,''술과 장미의 나날들,''찬란한 날들,''당신의 뒷모습,''찰스 호킨스 이야기'까지... '비밀을 지키는 법'의 마지막 문장을 읽으며 빵 터지며 실소하며 그 주인공을 비웃으며, '여자가 무서워'를 읽곤 주전자 소리를 내며 웃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렇게 웃은적이 얼마만인지.. 그리고 다음날 다시 책을 읽으며 그 순간 느껴지는 감정들과 생각들을 옆 빈공간에 적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각 단편에 담긴 다양할 수 있는 의미들에 대해 생각해 보며... 이 짧은 이야기들에 어떻게 이렇게 다양한 인생의 면모들과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을 담을 수 있을까? 그리고 모두 다 다른 이야기와 스타일(?)로 다양한 이야기들을 할 수 있을까.. 마지막 이야기를 다 읽고 다시 한번 처음부터 또 다시 음미하며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처음 읽었을 때는 일단 책 전체를 이해하기 위해 한번에 읽었다면, 이번에는 한편 한편 조금 더 천천히 음미하며 읽고 싶다는 생각으로 마치 내가 젤 좋아하는 아침이 시작되는 잔잔한 시간에 커피 한잔을 천천히 마시며 그 시간을 음미하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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