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읽고 나면, 편집자가 김형중 평론가에게 광주에 대한 에세이를 맡긴 것은 정말좋은 결정이야, 한 번 밖에 없을 '걸어본다 시리즈 광주편'을 김형중 평론가가 쓴 것은 정말 다행이야, 라는 생각이 든다.
한강 소설 『소년이 온다』를 읽으면서 5.18을 간접 경험했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지금의 광주를 경험한 듯 했다. 시리즈 이름이 '걸어본다'임을 알게 되었을 때 독자가 가장 기대하는 바는, 그 책을 읽는 동안에 마치 내가 그 공간을 걷고 있는 듯한 체험의 느낌일 것이다. 읽으면서 그런 느낌을 넘어서, 내가 직접 걸어도 이런 체험은 하지 못할 것 같다고 자주 생각했다.
광주의 보이는 모습보다는, 광주의 어떤 공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자의 문화적 깊이가 조금씩 드러나는 모습이 아주 매력적인 에세이다. 나에게는 '문화'라는 단어를 제대로 말하기 위한 일종의 교과서 같은 책이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문화가 아니라 산업인 이유는 그것이 소모하기보다 더 많은 부를 생산하기 때문이다. 역으로 시와 소설이 문화인 것은 그것이 아무런 이윤도 창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P66
그에게 문화란 아무래도 그 태생부터 잉여적인 어떤 것이었다. 문화란 필요적 소비를 제외한 잉여적 소비 행위에서 시작한다. 아무런 대가나 재생산에 대한 기대 없이, 내가 가진 자산과 시간과 에너지의 일부를 사유와 아름다움을 위해 기꺼이 탕진할 때만 진정한 문화는 탄생한다.- P71
양림동은 낙후되었다는 바로 그 이유로 몇 년 전부터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 광주의 명소가 된다. 왜냐하면 우리 시대에는 향수와 가난도 상품이 되기 때문이다.- P86
애도가 끝난 사건만이 기념될 수 있다.- P1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