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자인처럼 속에 담긴 글도 매력적이다. 어떤 문장을, 문단을, 토막글을 골라도 모두 매력적이다. 어떤 말이든 허투루 쓰이는 말이 없고, 있는 말들은 모두 정확한 위치에 있다. 정확하고, 웃기고, 무해하다.
* 이 책을 읽으면서 에세이는 자기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일까? 하고 생각했다. 마치 주인공을 작가 자신으로 설정한, 술에 관한 소설을 한 편 읽은 느낌이다. 특히 술을 매개로 파트너와 점점 더 가까워지는 이야기는 정말 생생하고 재밌었다. 넓지 않은 방에서 냉장고를 등받이 삼아 앉아 있는 작가의 모습이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 아, 나도 이런 사랑과 말장난이 가득한 에세이를 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적어도 이런 글을 하나쯤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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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기에는 모두가 암담했다. 모든 게 술처럼 부드럽게 목으로 넘어가지지가 않았다.
- P117
여자가 밥집에서 혼자 술 마시는 걸 두고 ‘멋있다‘고 말하는 사람들 역시 많은 건, 그 행동에 무릅쓴 ‘무언가‘가 포함되어 있다는 걸 무/의식적으로 감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혼자 술 마시는 남자를 두고 멋있다고 말하지는 않는 것처럼. 우리가 원하는 건 멋있는 게 아니라 그저 술을 마시는 건데.- P153
평소 좋아하던 술이라도 강요가 섞이는 순간 술은 변질되어버린다. 폭탄주로 봐야 할지 칵테일로 봐야 할지 애매한 경계에 있는 ‘소맥‘의 경우, 나에게 있어 분류의 기준은 ‘마시는 사람의 마음‘이다. 같은 소맥이라도 누군가 말아서 마시기를 강요하면 폭탄주지만, 내가 마시고 싶을 때 누군가 말아주면 칵테일이 된다.- P165
백지 위에서 쓱쓱쓱 같이 뒹굴며 같이 뭉툭해지며 같이 허술해져가며 마음이 열리고 말이 열리는 건 일부러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라 저절로 그렇게 되는 ‘상태‘이다.- P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