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막 태어났을 때, 아직 때도 묻지 않았던 어릴 적의 나를 만나는 시간이 있다.
그리고 막 사랑이 움트던 시절의 나도 만난다. 바로 나태주의 시를 보면 거기에 그런 내가 있었다.

그닥 예쁠 것도 없고 기억해주는 사람도 별로 없는 야생초같은 내게 눈길을 멈추어주고 이름을 지어주고 '너도 예쁘다'라고 말해주니 서러웠던 마음이 사라지고 내 자신이 소중해진다.

고작 서른자 정도의 글로 이런 힘을 건네는 시인의 마음은 얼마나 부자인가.
그 넉넉함이 내게도 전해지고 나도 누군가 포근히 안아주고 싶다는 따뜻함이 충전된다.
그래서 그의 시집을 보면 첫사랑을 만난 듯 설레이고 가마솥 가득 맛있는 요리를 해서 여기 저기 나누어주고 싶다는 인정마저 솟아오르게 된다.

내 삶의 화양연화는 언제였던가. 그저 가난하고 초라했던 기억이 더 많았는데 그래도 가장 아름답고 빛나는 시절은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해마다 봄이 오면, 꽃이 피면 언제였는지도 아득한 내 인생의 화양연화를 떠올린다.
봄이 오니, 꽃이 피니, 나도 한 시절 꽃이었던 것이 기억났다.

살다보니 사랑하는 마음보다는 미워하는 마음을 더 많이 품었던 것 같아 부끄럽다.
짧은 입맞춤의 기억만 가졌던 첫사랑을 보내면서 이루어지지 않음을 아파하지 않았고 더 이상 그를 사랑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그를 미워하지 않게 해달라고도 했다.
그 때의 내 마음을 시인은 지켜보았던가.

얼마나 많은 사랑을 하고 얼마나 많은 그리움을 가져야 이런 시가 나올 수 있으려나.
지구의 저 건너편 나비가 날개를 펄럭이면 태풍으로 나에게 온다더니
그 바람속에는 내가 떠나보낸 사랑하는 사람의 숨결도 나를 그리워하는 슬픔도 묻어있었구나.
가을 바람이 부는 요즘 누군가가 간절히 그리워 이렇게 창문이 덜컹거리나 보구나.
시집을 가만이 쓸어본다. 쓸쓸했던 마음이 포근해지고 아무에게나 편지라도 쓰고 싶어진다.
이게 나태주의 힘이다. 살다가 때묻고 지치고 쉬고 싶어지면 다시 펼쳐보고 싶은 그런 시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