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은 하늘이 낸다'고 생각한다. 망해가는 고려의 장수였던 이성계가 충신 최영의 명령을 어기고 위화도에서 말을 돌리는 순간 이미 그의 운명은 결정이 되었다. 온전히 자신의 선택이기만
했을까. 이미 하늘은 그를 새왕조의 시조로 예정을 했다고 믿는다.

변방의 장수로 남아 생을 마감할 수도 있었던 그가 세운 조선이란 나라는 이후 500여년을 이어간다. 세계사적인 눈으로 보면 그 정도의 시간을 이어간 왕조가 흔치않았다고 하니 성공한 국가였던 셈이다.
하지만 그의 아들, 이방원은 무신 집안에서 유일하게 문과에 급제한 수재였고 이성계가 눈물을 흘릴만큼 감격을 안겨준 아들이었다. 아직은 어리지만 내심 다음 왕으로 점찍은 이방석을 죽이고 왕이 될 수밖에 없었던 태종의 선택도 운명이었던 것일까.

자신을 왕으로 만들어준 아내의 집안과 며느리의 집안까지 피로 휩쓸어버린 냉혹함을 생각하면 '성군'이란 단어와는 너무 먼 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 여물지 못한 국가의 기강을 잡기위한 고육책이었다고 이해하기로 한다.
피의 군주였던 그가 세종과 같은 아들이 태어났다는 것은 우리민족의 행운이었다.
장자로 이어지는 왕위가 양녕의 일탈로 세종으로 바뀐 것도 역시 정해진 일일지도 모른다.

태종의 결정은 빨랐고 망설임이 없었으며 주변에 사람들은 그를 두려워했다.
한 나라의 가장 꼭대기에 올랐던 그는 행복했을까. 그의 잔혹함으로 인해 다가오는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그도 이미 그걸 알았고 그럼에도 자비를 덧붙이지 않았다.
그가 선택한 것은 후일에 혹시라고 고개를 들 후회가 아니라 고독이었다.
그게 리더가 짊어질 무게였다.

우리는 미움받을 용기가 있을까. 그동안 나를 위해 도움을 주었던 사람에게 칼을 겨눌 수 있을까.
나는 하지 못할 것같다. 그래서 이방원의 결단에 존경의 마음을 보태지 못하겠다.
다만 그의 칼에 묻힌 피는 초대국가의 반석이 되었다는 것은 인정한다.
나야 국가를 일으킬 능력도 의지도 없지만 각자 살아가는 이 세상이, 그리고 나 자신이 바로 국가가 아닐까. 인정에 이끌리고 부탁을 거절못하고 혹시라도 미움을 받을까 흔들리고...
결국 단단한 초석도 세우지 못하고 어정쩡한 삶을 살아가다 스러질 그런 국가가 바로 내 모습일 수 있다.
적어도 뭔가 하나쯤은 이루고 싶은 일이 있지 않은가. 그 소망을 이루기 위해 이방원의 처세를 잘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비난을 감수하고 스스로를 강한 리더로 달굼질 했던 그의 길에는 분명 더 큰 세상에 이르는 이정표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