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미국 범죄 드라마를 보면 경찰과 함께 꼭 등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법의조사관'들이다. 살인사건이든 자살사건이든 시신이 있는 현장이라면 반드시 참관하게 정해진 미국의 법제도로 인해 생긴 직업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프로파일러'나 '법의학자'가 비슷한 일을 하긴 하지만 미국처럼 '법의조사관'이란 직업은 따로 없고 반드시 참관해야 하는 규정도 없는 것으로 안다.

한 때는 알콜중독자였다가 뒤늦게 컬럼비아 대학 공중보건학을 전공하고 법의조사관이 된 바버라 부처의 경험담을 담은 회고록이다.
대개의 인간들은 죽음의 현장을 두려워한다. 언젠가 자신도 그 길을 가게 될테지만 특히 참혹하게 죽음을 맞은 마지막 모습을 지켜봐야 한다는 것은 엄청난 용기와 인내심이 필요할 것이다.

이서진이 등장하는 '뉴욕 뉴욕'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뉴욕의 다양한 얼굴을 보았었다.
구역별로 가장 부유한 사람들과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공존하는 도시!
바로 그 뉴욕의 90대 초반의 모습으로 시작하는 이 회고록은-거의 30년 전 이었다-
어마무시한 맨션에서 발견된 시신앞에서 화려하게 걸린 그림을 감상하는 저자의 모습과 땅굴같은 곳에서 죽은 지 한참이나 지난 노숙자의 시신을 조사하는 장면이 교차되면서 뉴욕의 극과 극의 모습을 보여준다.

경찰관이었던 아버지덕에 현장을 함께 조사하는 형사들이나 경찰과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를 알았다고 했다. 때로는 무례한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죽은 가족으로 인해 슬픔에 빠진 유족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실수와 경험을 통해 배웠다고 했다.
그럼에도 죽은 시신이 전하고자 하는 마지막 모습, 메시지에 주목하는 저자의 열정에 감동하게 된다. 나라면 절대 못 할일이다. 총에 구멍이 뚫리고 칼에 난자당하고 화재로 그을린 시신을 제정신으로 마주하다니...이건 소명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범죄를 저지를 사람들의 모습이 사실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선해서, 도저히 범인같지 않아서 놀랍기도 하다. 심지어 어린 소녀인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90대에는 지금처럼 DNA기법이 발달하지 않아서 범죄 현장에 남은 흔적만으로 범인을 추적하기도 쉽지 않았다고 한다.
그 방면은 대한민국이 최고지. 아주 적은 체액만으로도 유전자를 가려낼 수 있는 지금은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머리카락을 한웅큼이나 채취해야 했다니, 그런 범죄자를 어르고 달래서 얻어내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책을 읽거나 내가 애정하는 '용감한 형사들'을 보거나 할 때면 나는 인간이 얼마나 악한 존재인지를 다시 깨닫는다. 맹자의 '성선설'을 믿지 않는다.
겨우 오늘 오전에서야 이란과 미국이 잠정적으로 휴전을 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인간은 그런 존재이다. 길지 않은 평화를 못견뎌하고 못살게 굴고 심지어 죽여 없애야 희열을 느끼는 존재. '전남친'들의 스토킹 범죄가 하루 걸러 벌어지는 현실에서 내가 '성선설'을 믿을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누군가는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의 한을 풀어주고 범인을 잡아들어야 한다.
그나마 혼탁한 세상을 조금이나마 정화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퇴직하고 이렇게 회고록을 쓰거나 강연을 한다는 저자가 만난 수많은 영혼들이 안식을 찾았으면 했고 저자에게도 평안의 시간들이 함께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동안의 노고에 존경의 마음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