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 오늘같은 날 이 책을 집어 들었다. 마음에는 커다란 파도가 일렁거리는 것 같았고 지우개가 있다면 지우고 싶은 순간들이 너무 집요하게 나를 따라왔다.
인간의 인연도 운명이듯이 내 품에 들어오는 책들도 운명이라고 생각되었다.

'채근담'은 명나라 시대 학자 홍자성이 저술한 책으로 다양한 사상을 융합하여 인간의 도리와 삶의 지혜에 대해 말한다. 그저 지식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삶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고 행동해야하는지를 제시한다. 그래서 멀리 있지 않고 가슴에 와 가라앉는
책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살아온 얘기를 책으로 쓴다면 몇 권을 될것이다 라는 말로 파란만장한 시간을 주장한다. 아마 삶의 행복을 재는 저울이 있다면 대부분 행복보다는 불행한 쪽으로 기우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란게 내 생각이다. 멀리서 보는 삶은 행복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자신이 느끼는 삶은 너무 무겁게 느끼는 사람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렇다. 지나온 삶은 늘 무거웠다.

많이 흔들렸고 주저앉았고 후회의 연속이었다. 그나마 외롭던 소녀에게 와준 책들이 있어 다소나마 나를 일으켰고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조금씩 길을 찾아내곤 했었다.
이 책을 어려서 만났다면 조금 어렵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이렇게 살 수 있어? 라고 물었을테니까. 하지만 살아보니 이 책이 전하는 고요한 조언들이 그렇게 와 닿을 수가 없다.
이제 세상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게 되었고, 사람에 대해, 인생에 대해 알게됨으로써 마음의 문이 조금 열렸던 탓인지도 모른다.

죽고 싶었던 순간들이 한 두번이 아니었음에도 단테의 신곡에서 나오는 문장때문에 도저히 행동에 옮길 수가 없었다. 지옥조차도 받아들일 수 없는 너무도 큰 죄라고 했기에.
우리는 살아내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음을 안다. 평온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은 그 보다 더 어렵고.
그럼에도 한 번뿐임 삶이기에 다시 한 번 힘을 내어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다잡아보는 것이리라.
지금까지도 안 되는 일이 너무 많지만 '까다롭지도 너그럽지도 않게'라는 말은 나에게 불가능이다. 직선적이고 다혈질에다 솔직함까지 있으니 속마음을 숨기고 너그러운 척하지 못한다.
까다로운 나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이 부지기수였을 것이라 생각하니 너무 부끄럽다.
하지만 여전히 고치지 못하고, 앞으로도 자신이 없다.
그럼에도 잠시 이 책으로 나를 다듬고 지나온 시간들을 대입할 수 있어서 다행스럽다.
안에서 들끓던 불안과 미움과 후회가 잠시 가라앉는 듯 잔잔해지는 느낌이다. 감사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