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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눈이님의 서재
  • 나는 이병철이다
  • 박상하
  • 13,320원 (10%740)
  • 2025-01-13

내가 태어날 즈음의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가난하고 낙후한 나라였다.

전쟁이 끝나고 어지러운 정국속에 정치도 혼란스럽고 아마 그 무렵 우리나라는 외국기관의 원조를 받고 있었던 것 같다. 밀가루 음식들이 그 무렵 발달되었다고 한다.



그런 대한민국을 지금의 부강한 나로로 이끌 인물들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국경제를 이끈 삼성의 이병철, 현대의 정주영 같은 사람들이다.

한 인물의 등장이 대한민국의 미래가 되고 국민들의 영웅이 되기도 한다. 이병철은 바로 그런 인물인 셈이다.



이병철은 1910년 경남 의령의 부농집안에서 태어났다. 먹을 것 걱정이 없었던 어린시절에는 제법 속도 썩이다가 친척형을 따라 서울로 오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던 것 같다.

아주 오래된 기억속 이병철의 모습은 과묵하고 말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린시절 서울에서의 고독한 생활이 그를 말없는 사람으로 만들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후 와세다대학에 진학하지만 병으로 인해 중퇴를 한후 고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후 아버지에게 돈을 얻어 사업을 시작하게 되는데 첫 사업이 정미사업이었다.

내가 알기로 정주영 역시 정미소를 운영하지 않았던가. 과거 쌀은 그만큼 중요한 자원이었던 것 같다. 쌀가격에 대해 정보가 부족했던 이병철은 고전했지만 전략을 세워 잘 이끌었다고 한다.

정미소사업이 흑자로 전환하자 트럭을 사들여 운송사업을 하고 논을 사들여 자본을 불린다.

하지만 일본과 중국사이에 전쟁이 일어나자 부채상환을 독촉하는 일본정부때문에 정미소와 운송회사까지 넘겨주고 만다.



실패한 그가 선택한 것은 여행이었다. 우리나라 대도시를 넘어 중국의 베이징, 상하이등을 돌면서 사업의 가능성을 진단해본 시간이었다.

여행에서 돌아와 설립한 '삼성상회'! 대한민국 삼성이라는 이름의 시작이었다.

'조선양조'를 인수해 엄청난 돈을 벌었지만 그는 후에 이 조선양조를 매각한다. 술로 돈을 버는 일을 경계해서였다고 한다.

말은 없는 사람이었지만 스케일이 남다르고 미래를 보는 안목이 탁월했던 이병철의 시간은 실패보다는 성공이라는 결과가 더 많았다. 그만큼 그의 선택이 맞았다는 것이다.

삼성상회에서 반도체에 이르는 그의 일대기는 꽃길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한국비료사건이나 군부의 압력같은 것으로 많은 고초도 겪었다고 한다.

하지만 미래를 보는 그의 안목이 지금의 삼성을 만들었고 세계의 기업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삼성이 없었다면, 이병철이 없었다면 우리의 지금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권력이 바뀔 때마다 대기업을 욱죄는 권력자들에 의해 수없이 매를 맞았지만 얼마전 이병철의 손자 이재용역시 무죄를 받으면서 몇 년간의 고초에 종지부를 찍었다.

제발 권력자들이여! 정신좀 차리자. 물건 제대로 만들어 국위선양하는 사람들을 돕지는 못할망정 핍박하는가. 하늘에 있는 이병철도 여전한 이 현실에 혀를 차고 있을 것이다.

그의 뚝심에, 그의 선택에 우리 민족은 감사한 마음을 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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