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라는게 소통의 가장 일차원적이면서 어렵기도 한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그중에서도 한국어는 대단히 어려운 언어라고 생각한다.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구사하는 우리야 모르겠지만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배우는 과정을 보면 오 무척 어려운 언어구나 이해가 된다.
한국어뿐만이 아니라 모국어를 제외하고 다른 나라 언어가 쉬울 수가 없다.
웃고 들어갔다 울고 나온다는 일본어도, 울고 들어갔다 웃고 나온다는 중국어도 어렵다.
그렇기에 몇 개 국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은 보면 존경의 마음까지 드는 것이다.
정말 대단할 것 없어 보이는 히키코모리, 사이토 뎃초군이 루마니아어로 소설을 쓰고 루마니어 친구들고 소통하고 살고 있다니 놀랍지 아니한가.
영어도 아니고 프랑스어도 아니고 심지어 독일어도 아닌 루마니아어로!
동유럽의 언어들이 다들 비슷하게 들려서 따로 루마니아어가 있다는 사실도 잘 몰랐다.
우크라이나어나 불가리아, 체코같은 곳들의 언어는 러시아어와 비슷하지 않을까.
그저 막연하게 그렇게만 생각했다. 저자의 말로는 태생은 비슷하게 시작된 모양이다.
또한 언어의 퍼짐성(?)은 국력과 비례한다고 믿는다. 그러니 한 때는 공산국가였고 아직은 빈약한 루마니아어가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하필 일본의 지바현 구석에, 그것도 부모님집에 얹혀 살고 있는 히키코모리가 루마니어와 만난 인연은 정말 특별하게 다가온다. 심지어 가장 흔한 영어조차 별볼일 없는 성적이었다는데..
중요한건 그가 정말 열성적으로 전하는 루마니아어의 특징과 루마니아 작가, 친구들과의 에피소드가 아니고 그가 전혀 만날 것 같지 않았던 이국의 언어를 만나 소설을 쓰고 소통을 해나가는 과정이다. 그게 가능하다니. 제목처럼 정말 '뭐든 하다 보면 뭔가 되긴 해'가 절로 이해가 된다. 특별해보이지도 않고 심지어 인간관계도 어설퍼보였던 한 청년의 성장이 놀랍기만 하다. 제 나라 말로 소설을 쓰기도 어렵다는걸 알면 이국의 언어로 소설을 쓸 수
있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고 여겨진다.
최근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소식에 온 국민이 행복해졌다.
세상밖에 자신의 마음을 드러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부러운 일이지만 놀라운 집중력으로 벽 하나를 뛰어넘은 일본의 청년에게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흠 이러다가 그가 쓴 루마니아어 소설이 노벨상을 받는건 아니겠지?
뭐든 하다 보면 그런 날도 오지 않을까? 기적이 현실이 되는걸 보여준 에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