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리뷰] 문학비평에서의 실험
골방철학자 2014/12/09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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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비평에서의 실험
- C.S. 루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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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안의 세상 읽기 ㅡ문학비평에서의 실험
문학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선에 대하여 - 문학 그리고 예술 전반을 넘어 작품을 보는 방법은 무엇일까
1. 문학소녀 VS 비문학 소녀 - 문학 작품을 볼 때 필요한 것은 많이 없다.
어떤 작품을 논할 때 우리는 흔히 작품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을 동반하지 않는다. 우리가 그저 보고 느낀 점을 그대로 이야기할 뿐이다. 예를 들어 최근에 개봉한 영화를 보고 이야기할 때 사회적인 용어나 영화의 용어를 가지고 이야기 하지 않는다. 영화에서 보고 느낀 점이나 또는 내 개인적인 지식과 함께 이야기를 한다. 이처럼 우리가 문학이나 영화와 같이 예술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들을 가지고 이야기할 때 이런 전문적인 용어 없이도 충분히 비평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문학소녀와 비문학소녀를 나누듯 전문가와 비전문가 또는 다수의 독자와 소수의 독자를 나누어 설명할 때 우리는 예술 작품 또는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어떻게 봐야하는 것을까?
[나니아 연대기]로 유명한 작가 루이스는 [문학비평에서의 실험]에서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문학비평에 대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흔한 비평가의 이론들이 아닌 문학을 접하는 독자들을 대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앞에서 나눈것처럼 비문학독자와 문학독자로 나누어 그들이 문학을 어떻게 보고 있으며 우리가 문학을 바라볼 때 어떻게 봐야 하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는 크게 확대하여 우리가 과연 예술작품을 바라볼 때 어떻게 봐야 하는지도 이야기 할 수 가 있게 된다.
루이스가 말한 이야기는 많지만 요약하자면 하나로 이야기할 수 있다. 우리가 문학작품을 볼 때 그 문학작품의 외적인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작품 자체를 봐야 하며 작품 속에 존재하는 비극, 리얼리즘 이 모든 것들을 인생과 철학적인 부분까지 확대해서 과장되게 보는 것은 좋지 않다고 본다. 특히 우리가 문학의 전문가라고 하는 비평가들의 실수 중 하나가 바로 이 부분이며 많은 다수의 비문학 독자의 실수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독서를 시작하고 그 중 일부분은 흔히 문학소녀라고 불릴 만큼 심취한다. 그리고 이러한 문학소녀와 비문학소녀의 차이점은 바로 작품을 보는 눈에 있다. 대부분 독서는 그 작품을 보기 보다 작품 속에 드러나는 아름다운 문구와 내용과 반전 그리고 무리한 교훈에 집중한다. 그리고 독서를 통해 재미를 느끼기보다 무엇인가를 배우려고 하는데 루이스는 이 부분을 비판하고 있다. 우리가 문학을 보기 위해서는 무리한 교훈에 집착해서도 안되며 반전과 문구에 집착해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문학은 재미있어햐 한다고 본다. 많은 사람들이 책을 보는데 가장 큰 실수는 재미보다는 무엇인가를 얻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자신에게 맞지 않는 책을 고르는 것이다. 옷을 입어도 자기에게 맞는 옷을 입어야 아름답지만 그렇지 못하면 절새미녀라도 어색하기 마련이다. 특히 이러한 독자들 중에서 자기계발서에 유독 몰리는데 자기계발서가 마치 성서라도 되는 것처럼 보는 독자들은 결국 그 책에서 얻는 것은 하나도 없게 된다. 즉 독서란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서 읽어서는 안 된다. 내가 책을 통해 재미있게 읽고 그 작품 자체를 보게 된다면 어느 샌가 작가가 말하는 메세지를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고 결국 책에 대한 재미를 느끼면서 진정한 문학비평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루이스는 이러한 점에서 비평가들의 잘못된 실수를 이야기하고 우리가 문학 외적인 부분에 현혹되는 것이 아니라 문학 자체를 봐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즉 문학을 비롯한 예술 작품을 방법은 딱 하나! 외적인 것이 아닌 그 작품 자체를 보되, 나에게 맞게 보라는 것이다.
2. 예술이란 재미있는 것이다. 억지로 짜맞출 필요는 없다.
앞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외적인 부분에 집착해서는 그 안의 진실된 모습을 볼 수 가 없다. 문학도 그림도 모든 예술 작품도 외적인 부분에서 찾으려는 생각을 하면 안 된다. 문학 작품 그 자체를 보기 위해 외적인 부분을 가져오는 것은 도움이 될 순 있다. 예를 들어 에코의 [장미의 이름]과 [바우돌리노]를 읽기 위해 그 시대의 역사를 이해하고 읽는 것은 도움이 된다. 하지만 역사를 모른다고 에코의 작품들을 이해못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해 못하는 역사적인 부분을 제거하고 본다하더라도 책의 주제는 이해할 수 있다. 또한 그 주제를 이해하기 위해서 전문가의 의견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 그 시에 대한 감상평을 볼 필요는 없다. 시대에 따라 받아들이는 것이 다르듯이 사람마다 내가 받아들이는 것은 다르다. 같은 음악이라도 나에게는 슬픔이 될 수 있듯이 말이다.
문학이란 쉬운 것이다. 독서란 쉬운 것이다. 내가 받아들일만큼 받아들이고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과감히 포기하면 문학 그 자체로도 충분히 나에게 아름다운 것을 준다. 이는 예술 작품 모두를 포함하여 작가, 비평가, 대다수의 독자들 모두가 마찬가지이다.
가끔은 모든 부분에서 쉽게 다가서는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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