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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님의 서재
  • 침이 고인다
  • 김애란
  • 13,500원 (10%750)
  • 2007-09-28
  • : 10,680

김애란 작가, 《침이 고인다》中〈네모난 자리들〉 감상리뷰

 

처음 제목으로 이 소설을 보았을 때는 낯설었다. 네모난 자리들, 무언가 있었던 존재의 흔적들 같은 것을 이야기하고 싶은 걸까? 왜 하필 네모이지? 소설의 내용에 대해 궁금증을 갖게 하는 제목이었다. 이 소설을 집어 들고 조금은 떨리는 마음으로 처음 읽기 시작했던 것 같다. 소설 속에서의 작가는 나와 비슷한 나이의 또래였다. 대학교에 갓 입학해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일들, 그 속에서 만난 최두식 선배와의 일과 자신의 감정 등이 지금 나의 감정들과 맞물리면서 점점 이 소설의 이야기에 마음을 붙이게 되었다.

10여 년 전 주인공은 엄마로부터 어릴 때 지냈던 방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이때 엄마와 함께 가서 보았던 어두운 방에 대한 기억이 현재의 주인공이 구불거리는 길을 올라 특정한 ‘방’에 들어갈 때마다 상기된다. 방은 이 주인공이 기억하지도 못하는 아주 어린아이일 때부터 주인공이 머물렀던 공간이다. 누군가의 생활공간이기도 하고, 밖에 다니다가도 결국은 돌아와 쉬게 되는 곳. 방이라는 공간은 존재의 안식처이면서 동시에 출발점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이것은 주인공의 엄마가 10여 년 전 아이인 주인공과 함께 예전에 살던 방에 다시 왔을 때 주인공의 질문에 ‘그건, 네가 있기 위해서였다’고 대답한 것과 같은 맥락인지도 모른다. 엄마는 그 텅 빈 공간이 안락함인 동시에 어둠인, 그래서 존재가 있을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일까. 아직 이 내용이 완벽하게 이해가 되진 않지만 제목이 곧 방을 암시하는 만큼 작가가 가장 이야기하고 싶은 내용일 것이다.

주인공이 대학 선배의 방에 가서 사람들과 여럿이 옷걸이를 머리에 매고 장난쳤던 것을 이야기 할 때 머리에 물음표를 달았다는 내용을 보고 참신하고 괜찮은 생각이라고 느꼈다. 젊은 날의 끝없는 고민과 질문들, 그리고 ‘내 속에 있는 문법들을 새로 뜯어고치고’ 있는 중인 청춘의 때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모습인 듯하다. 내 머리에도 보이지는 않지만 옷걸이 모양의 물음표가 하나 달려있는 상상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되었다. 스무 살, ‘야자’를 하고 ‘선생들을 헐뜯거나 단체 기합을 받고’있던 곳에서 벗어나 처음 넓은 세상을 만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이 때에 하게 되는 수많은 질문들과 내면의 공허함 같은 것들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모습을 머리 위의 물음표가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이야기 중에 한강을 바라보며 등교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그 대목을 보고 나는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마침 지하철을 타고 한강을 지나친 직후였다. 나는 서울의 남쪽에 살아서, 나또한 지하철을 타고 등교할 때에 하루 두 번, 한강을 본다. 지하철 안에 서서, 또는 앉아서 무언가를 보고 있다가도 압구정역에서 옥수역으로 지나갈 때만큼은 밖으로 빠르게 지나치는 한강을 보기 위해 재빨리 고개를 든다. 그때마다의 나의 마음은 매일 조금씩 두근거렸다. 그런데 작가도 같은 기분으로 한강을 바라보고 나와 똑같이 ‘재빨리 몸을 틀어 창밖을 내다보곤 했다’는 것이 너무나도 반가웠다. 동시에 그 순간을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표현으로 멋있게 서술한 것에 질투를 느끼기도 했다.

주인공과 두식 선배가 새벽에 방에서 나와 함께 걷는 장면에서 주인공이 힘겹게 입을 떼려 했을 때, 때마침 선배는 출구를 발견하고 다급하게 소리친다. 과연 긴 골목들을 걷는 동안 이 선배는 정말 출구가 어딘지 몰랐던 것일까? 왜 이 주인공과 같이 오래도록 길을 헤매었을까. 어쩌면 자기의 옛 사랑의 추억을 되새기며 계속해서 오래 걸었던 그 길에 대해 그리워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방에서 출발하여 출구까지의 길이 멀었던 것은, 또는 멀게 돌아온 것은 쉽게 찾을 수 없는 인생의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또한 때로 우리는 답을 알면서도 빙 돌아간다. 게으름 때문일 수도 있고 내려놓지 못하는 욕심 때문일 수도 있고 너무나 많은 질문 때문일 수도 있다. 이런 여러 이유 때문에, 혹은 이유가 없는 이유 때문에 우리는 길을 돌아간다. 새벽에 이 둘이 함께 이리저리 ‘꼬불거리는’ 길을 헤맸던 것은 젊은 날의 이유 없는, 그리고 답을 알 수 없는 방황을 이야기하고 싶은 건 아니었을까.

그리고 몇 달이 지나, 주인공은 잊으려 했던 선배의 방이 있는 곳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그곳은 늘 불이 어슴푸레하게 켜져 있었는데, 이 방에 그 선배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게 불이 계속 켜져 있었던 것은 그 선배가 눈앞에 보이지는 않지만 주인공의 기억에도 마음 한 켠에 항상 선배에 대한 아른아른한 감정이 남아있던 것을 상징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드디어 그 선배의 방에 들어갔을 때, 주인공은 방이 불이 켜진 상태로 깔끔하게 비어있는 것을 확인한다. 그리고 발견한 한 글귀,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이 부분을 보고 나는 읽어 내려가던 시선이 멈추어졌다. 커다란 소리가, 커다랗게 징이 울리는 소리가 내 마음 가운데를 친 것 같았다. 어쩜 이렇게도 적절하고 마음 울리는 시구를 때마침 써 넣었을까, 하고 감탄했다. 그리고 곧 갑자기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는 말을 보고 마음의 눈물을 같이 흘렸다. 그러고 나서 ‘결심한 듯’ 스위치를 내려 불을 끈 주인공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갔다. 그것은 어쩌면 이제는 선배를 잊겠다는 다짐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방에서 나오곤 하던 존재에 대한 마음속 한 켠의 기억의 불을 끈 행위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얼마 후(며칠이 지난 후를 이야기하는 것 같다), 다시 그 방에 도착했을 때 주인공은 또다시 ‘결심한 듯’ 스위치를 올려 방에 불을 환하게 밝힌다. 그리고 문을 닫는다. 이 너무나도 매력적인 마무리는 이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방’에 대한 작가의 총체적인 정리인 것 같다. 어린 시절에 보았던 내가 있었던 자리라는 방에 빛이 없이 어두웠던 것과 좋아하던 선배의 방에 항상 빛이 있었지만 어두운 상태로 잠시 있었던 것 전부에 불을 밝히고 싶은 작가의 마음이 아닐까. 불을 밝힘으로써 자신이 지나온 자리, 또한 무언가 있었던 자리를 마음 한 켠에 고이 간직하고 싶은, 마음속에 ‘네모난 자리들’을 두고 싶은 작가의 소망이 상징적으로 드러난 행동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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