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을 담은 사과문
오래전의 사소한 오해로 사이가 멀어진 친구가 있다. 나름 친하게 지냈다고 생각했는데 온전히 혼자만의 생각이었던가 보다. 시간은 자꾸만 흐르고 뒤늦게라도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을 해야 하나 싶어 몇 번이나 망설였다.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서 정작 미안하다는 말은 오히려 내가 들어야 된다는 욕심에 망설임이 계속된 건지도 모르겠다. 내가 사과를 한다 해도 그 친구가 과연 받아줄 지 의심부터 들고 이래저래 마음의 짐이 되어가고 있는 요즘이다. 이런 시기에 읽게 된 적절한 책, 《내 사과가 그렇게 변명 같나요?》는 내게 조언자와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더 공감하는 기분으로 책을 읽었다.
이 책의 작가 마스자와 류타는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이며, 사죄기자회견이나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사죄전문가로서 뉴스에 출연하기도 하는 사람이다. 사죄전문가라는 생소한 분야가 있었다니, 호기심이 생긴다. 이 책에서 주로 이야기하는 사과의 방식은 대부분 기업체의 사례들로 이루어져있다. 표지에 적혀 있는 " 미안하다고는 하는데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다!" 라는 문장이 솔깃하다. 개인 간의 공방일줄 알았는데 작가는 기업체, 정치인, 연예인,SNS를 이용하는 불특정다수의 네티즌들을 모두 아우르는 사과 기법에 대해 상세하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물론 가장 기본적인 것은 제대로 된 사과 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간혹 진심이 통하지 않을 때에 어떻게 대처해야하는가도 자세히 알려준다. 사람 사이가 멀어지거나 틀어지는 건 신뢰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한 번 깨어진 신뢰를 되돌리는 것만큼 힘든 일은 없다. 개인과 개인의 일이든 개인과 기업의 일이든 그건 중요치 않다.
사과하는 타이밍의 중요성에 대한 코멘트는 참으로 맞춤한 조언이다.
친구에게 먼저 사과하지 못하는 나의 옹졸함을 탓하고 있을 때 뉴스에서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람들이 갖가지 표정과 몸짓으로 < 대국민 사과문>을 읽는다. 가장 최근의 사과 방송은 모 도의원들이다. 부적절한 해외연수로 국민들의 질타를 받고 서둘러 귀국하여 사과방송을 하고 있다 그러나 말투, 행동, 눈빛까지 이 책에서 말하는 사과의 정석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심지어 점점 더 국민들의 분노에 불을 붙이는 일을 지금까지도 서슴지 않고 있으니 사과의 정석에 대한 공부가 필요할 지경이다. 사과는 자신을 완전히 내려놓고 시작하는 일이다. 내가 아무런 잘못이 없어도 사과를 해야 할 일은 살다 보면 늘 맞닥뜨린다. 그런 일이 어디 한 두 번이겠는가. 작가가 성공적인 사과의 예로 제시한 파나소닉 기업의 이야기는 실로 감동적이었다. 1980년대 후반에 제작 판매한 FF난방기의 부품불량으로 사망사고가 일어났고 그 원인을 2005년에야 밝혀냈다. 당시 마츠시타 측은 대대적인 사과광고와 전량 리콜을 실시했으며 대당 50만원이란 배상금도 일괄 지불했다. 파나소닉으로 회사명을 전환한 지금도 홈페이지 메인에는 1985년에서 1992년 사이에 구입한 FF난방기를 회수한다는 안내문이 공지되어있다고 한다. 매년 공지프로그램을 설치하고 관리하는데 2천억 원이 든다고 하는데도 꾸준하게 공지를 띄우고 진심을 다하고 있음을 알린다. 이 기업은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했다. 적합한 대처로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사과에 진정성이 담으려면 내가 무엇부터 해야 하는 지 생각해본다.
뉴스에서 보는 정치인, 기업인들의 사과문에 마음이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사과하는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무엇을 사과하는지, 누구에게 사과하는지, 언제 사과할 것 인지부터 점검해 봐야한다는 작가의 글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매스미디어를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는 내용에서는 좀 더 상대방의 진심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기자회견장에서의 고개 숙임도 면밀하게 계산된 사죄의 스킬임을 알고 본다면 그 진정성을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다.
각 기업체들의 사죄사례를 읽는 재미도 있다. 성공한 사과는 기업을 존속시키지만 엉뚱한 실언이나 손으로 하늘을 가리는 행동이야말로 파산에 이르는 지름길로 전락한다는 것도 배웠다. 책 사이마다 한국의 사죄사례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두어 비교해볼 수 있는 것도 참 좋았다. 사과의 기법이라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들이 용기를 내라고 부추긴다. 사과를 받은 입장과 하는 입장에서 결국 마음의 평화를 얻는 쪽은 하는 입장이라는 맺음말이 더 오랜 여운을 남긴다. 마음의 짐이 되는 묵은 오해를 풀러 갈 적절한 타이밍을 나도 진지하게 고려해봐야겠다.
cycling5@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