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다 읽었다. 아껴가며 천천히 읽었다.
나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일어난 그 엄청난 일도 어른이 되고 나서야 알았다.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되던 청문회에서 그런 사건이 있었단 걸
알았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내가 너무 무지해서 철이 없었던 건지 국민의 눈과 귀를 전부 가리고 모른 척했던 무시무시한 언론과 정부의 탓이었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1980년에 나는 중학교 1학년이었다.
이 책을 읽고나서야 세상엔 내가 몰랐던 비밀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또 다시 깨우친다.
옥숙이의 소설 [ 흉터의 꽃 ]을 읽고 합천에 히로시마 원폭피해자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당시 일본 땅으로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끌려가야 했던 조선인들과 자의반타의반으로 고향을 등진 민초들은 또 얼마나 많았겠나. 그럼에도 원폭 피해자는 일본인들뿐이라는 고정관념에 인이 박혀 살았다. 여태까지 살아오는 동안 그 어디에서도 " 나는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입니다" 라고 한국어로 된 목소리를 들어 본 기억이 없다.
책을 읽으며 피해자의 지난한 삶에 함께 울었다. 차마 페이지를 넘기기 어려워 한 숨만 쉬고 가자며 책을 덮어 놓아야 했다. 그들의 죄가 아니라고, 잘못한 게 아니라고 다독여 주지는 못할 망정, 오히려 더 상처를 할퀴고 왜 망가지게 하는지 주인공들의 주변인들에게 너무나 화가 났다. 가난한 게 죄였고 살아남아 목숨줄을 이어가는 죄라고 원폭의 공포를 겪은 이들을 어쩌면 단 한 사람도 감싸주지 않는 지... 폭력적인 장면들은 정말 가슴아팠다. 그리고 문득 나 역시도 주변인들과 똑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몰랐다는 말은 관심 조차 갖지 않았다는 것과 동급이다. 이것 역시 또다른 방식의 폭력이다.
김형률이란 원폭피해 2세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의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도 온갖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2세와 3세대의 현실적인 갖가지 문제들은 여전히 답이 없었을테다. 물론 속시원한 해결책이 아직은 보이지 않지만 삶은 계속 되어야한다는 주장처럼 억울한 일 없이 조속한 시일안에 어떻게든 살아 갈 수 있게끔 좋은 방안이 나와주길 바란다.
그리고 무엇보다 놀란 건 방대한 자료조사와 작가의 현장발품이 글마다 고스란히 보였다. 일본에 와 있다며 연락하던 그 때 친구는 소설원고와 함께였구나 싶어 역시 옥숙이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공부는 어려운 게 아니다. 우리가 결코 잊거나 방관해서는 안되는 일들을 오래 오래 기억해야 한다. 그것이 진짜 역사공부다. 살아 있는 지식이고 지혜다. 부디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고 원폭피해자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들불처럼 번져나갔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