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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님의 서재
  • 여자 목숨으로 사는 남자
  • 구광렬
  • 11,700원 (10%650)
  • 2015-07-02
  • : 81

법정에 서고 송사에 휘말리면 그것이 곧 집안을 말아 먹는 지름길이라고 종종 들어왔다 .그렇지만 어떤 알 수 없는 이유로 인해 억울한 옥살이를 하게 된다면? 그것도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이국에서, 나에게 온통 악의만 가득 품고 있는 낯선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차라리 지옥이라 믿어도 될 만큼의 열악한 처지에 놓여 있다면 과연 나는 어떻게 견디고 버텼을까.....

읽는 내내 전율이 일었다. 혼자서 아무리 결백을 주장해도 결국 돌아 오는 것은 전재산을 깡그리 털어주고 거지가 되어 감옥 밖으로 나가든지

짓지도 않은 죄를 옴팡 뒤집어 쓰고 형을 살든지 단지 두 개의 선택권뿐인 멕시코의 법체계가 놀랍다. 돈이면 살인자도 풀려나는 이 나라의 법은 어느 것이 정의고 어느 것이 단죄의 기준인지 의심스럽다.

 

한국인 청년 강경준은 도난 차량을 구매한 공범으로 몰려 악명 높은 감옥 나우칼판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본인도 어찌 보면 피해자일텐데 엉터리 같은 멕시코의 사법 체계에서 [결백]은 그저 허황한 꿈이었다. 넉넉치 못한 집안 환경때문에 스스로 한국을 떠나 무엇이든 이루고자 하는 유일한 희망으로 가난한 유학길에 오른 청년 경준에게 그야말로 마른 하늘의 날벼락이었다. 인터넷이나 다른 매체를 통해 멕시코의 불안한 치안과 마약상들 그리고 마약상을 따라 다니는 갱들 또 그들간의 조직 내 이권 다툼으로 언제 어디서 날아오는 총알에 목숨을 잃어버릴지 모르는 사회적분위기를 조금은 접했던지라 멕시코가 배경이 되는 소설을 접하니 글 하나 하나마다 남 일 같지가 않다. 영화 한 편을 보는 것처럼 몰입해서 읽었다.

 

처음에 제목만 읽었을 때는 어머니의 이야기인줄 알았다 .여자의 목숨으로 사는 남자라면 그 여자는 당연하게 엄마가 아닐까, 짐작했던 것인데 여자의 목숨으로 사는 남자의 이야기는 전설로 전해져 내려 온 거고 주인공 경준 역시 신화 속의 남자처럼 여자들로 인해 생명을 이어 나갈 수 있었다. 여자 목숨으로 사는 남자는 멕시코 인디언인 첼탈족의 전설이야기다

치첸이라는 전사가 있었는데 열 두 여자를 만나 그 여자들의 수명을 살게 되었다고 한다. 나중에는 하루라도 빨리 죽음을 기다리는 즐거움으로 살았더라는 슬픈 전설인데 탈옥 후 도망치는 길에서 만난 어느 노파의 입을 통해 경준이 듣게 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전설 속 치첸처럼 경준을 사랑한 여자들은 모두 세상을 떠난다. 어쩌면 그 여자들의 수명을 이어 받아서  살아 가야 할 운명이었음을 그래서 죽음을 기다리는 즐거움을 세월이 흐른 후에야 깨달은 경준의 쓸쓸한 인생이야기는 아니었나싶다.

 

사법체계가 뇌물이나 금전으로 망가져 가면 그 나라의 미래는 암울해진다. 법보다 주먹이 가깝고 대화보다 총알이 먼저 날아 오는 세상이라니...

생각만으로도 몸서리가 쳐진다. 첫 페이지에 2005년 테피토 사건으로 억울하게 수형생활을 한 멕시코 교민들께 이 책을 바친다는 헌사가 적혀 있다. 테피토 사건이 무엇인지 몰라서 따로 검색을 해 봤다. 한국의 남대문시장과 흡사한 곳인데 멕시코 시티에 있는 테피토시장이라는 곳에 한인 상인들이 많이 밀집해있다고 한다. 마약거래가 성행하고 범죄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곳이라 상인들이 총격사건으로 피해를 자주 당하는 곳이라 되어 있다. 정의가 존재하지 않는 곳일까? 끝이 보이지 않는 독재와 마약 부정부패 무능한 경찰...... 사람 목숨이 그저 인원수 채우는 수단에 불과하고 생명의 존엄성이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하지만 이 곳에서도 사랑은 있었다. 사람 사는 곳에 사랑이 없다면 세상은 늘 사막 같을거다 . 가려진 영웅의 자리까지 오르지만 결국 다시 감옥으로 돌아간 경준의 인생에 희망이란 없어보인다. 그래도 경준은 기다린다 즐거운 죽음을.  첨부터 끝까지 무거운 마음으로 읽은 책이다. 강경준의 삶이 드라마틱하거나 액션영화같아서가 아니라 그를 사랑한 여자들의 눈물과 애정이 내게도 참 먹먹하게 와 닿았기 때문이다. 흔한 대중가요의 오래된 가사처럼 사랑 없는 삶이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누구의 목숨을 이어 살아가든 서로 기대어 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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