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도 우리와 똑같았다.
nemo_sparrow 2024/06/07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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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증오의 시대, 광기의 사랑
- 플로리안 일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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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 - 2024-06-10
: 4,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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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동화 같은 사랑을 꿈꾼다.
어떤 형태로든, 현실은 아주 냉혹할지라도.
타인의 은밀한 사생활을 엿보는 관음적인 욕구는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 유명하다는 이유로 자신의 과거가 후대의 낯선 사람에 의해 파헤쳐 지는 기분은 별로일지 모르겠지만. 그것도 아주 낱낱이, 마치 인류학자가 고대 유물을 조심스레 발굴하듯.
작가 플로리안 일리스는 『증오의 시대, 광기의 사랑』을 통해 유명인, 예술인들의 사랑과 관련되어 일어난 사건들을 기록했다. 사랑과 배신, 이성애, 동성애, 양성애, 불륜, 이기적인 사랑, 계약 연애, 모든 사랑이 펼쳐진다.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1929년부터 1939년까지, 사랑에 관한 다양한 사건들을 연대순, 단편적으로 나열하고 있다. 등장인물이 아주 많아서 수시로 장면의 전환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초반에는 혼란스럽지만 차차 정리가 되는 걸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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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드 보부아르와 장 폴 사르트르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둘의 첫 만남부터, 자유연애를 선언한 사르트르의 끝없는 바람기 때문에 시몬 드 보부아르가 괴로워하는 이야기까지도.
그밖에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사르트르, 보부아르, 헤밍웨이, 피츠제럴드, 피카소, 나보코프, 비트겐슈타인, 살바도르 달리, 스탈린과 괴벨스까지도. 그 수가 꽤 많아서 헷갈리기도 하는데, 이 책에서는 약 600여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고 한다. 책을 읽다가 아는 인물 나오면 오래된 친구를 만난 듯 반가운 마음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술되기 때문에, 앞에서 나왔던 인물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급변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 인물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지켜보는 것이 일종의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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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증오와 광기의 시대, 독일에 사는 예술가들이 생존을 위해 독일을 탈출하면서 겪는 일화들이 많이 나온다. 게슈타포에 쫓기는 프리드리히 홀랜더, 처형자 명단에 올라 급히 떠나는 하인리히 만 처럼.
작가이자 저널리스트 볼프강 쾨펜은 사랑해서는 안되는 여자를 사랑했기 때문에 독일을 떠나야 했다. 그가 사랑했던 여자는 나치 친위대장의 여자였기 때문에. p.84
아내가 자살하고 나서 이오시프 스탈린은 제니아와 불륜을 시작했다. 그리고 제니아와 그녀의 남편, 처형과 처형의 남편은 스탈린의 부하에 의해 모두 죽음을 맞았다. p.90
『위대한 개츠비의』의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 그의 아내 젤다 피츠제럴드는 1934년 내내 정신병원을 전전한다. 스콧 피츠제럴드는 오로지 보모의 손에서만 자라고 있는 딸 스코티에게 편지를 보낸다. “마음이 아픈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항상 손님일 뿐이란다. 읽을 줄도 모르는 부서진 계율판을 들고 다니는 영원한 이방인이지.” 그리고 딸에게 이 말을 해준다. “너는 정말 나쁜 본보기를 보여주는 부모를 만났지. 우리가 한 것과 반대로만 하면 다 잘될거야.” p.97
새로운 사령관은 에리히 뮈잠에게 이틀 안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고 권했다. 이틀 뒤 감방 동기들은 화장실에서 먹을 매단 채 죽은 에리히 뮈잠을 발견했다. 누가 봐도 자살이 아니라 타살이었다. p.101
아나이스 닌은 아기 아빠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그녀는 결국 임신중절수술을 하고, 자기가 낳은 죽은 여자아이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그런 다음 잠재적인 아빠들을 맞이하기 위해 화장을 하고 실크 재킷을 입었다. p.103
피카소는 이혼 절차를 밟으면서 그림 그리는 일을 그만둔다.
분할 대상이 될 재산을 더 이상 만들지 않기 위해서다.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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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맨 레이는 이렇게 말한다. “점점 거세지는 증오의 물결이 유럽을 휩쓸기 시작할 즈음에 그려진 이 작품에서 사랑은 우주적인 차원을 얻게 된다."』 p.80
앞서 책 속에는 이성애, 동성애, 양성애, 불륜, 이기적인 사랑, 계약 연애 등 모든 사랑이 펼쳐진다고 했다. 이것들이야말로 우주적인 차원으로서의 사랑이 아닐까. 함축하면 『증오의 시대, 광기의 사랑』.
작가는 “위대한 사람들도 보통 사람들처럼 사랑 때문에 울고 웃고 상처받고 좌절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옮긴이
이 말에 공감이 갔다. 작가는 분명 이것을 우리에게 알리고 싶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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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을 앞둔 광기의 시대, 이때도 우리는 살고 있었고 뜨거운 가슴은 존재했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인간의 사랑은 어떤 형태로든 계속 이어진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증오의 시대가 아닌 평화의 시대(어쩌면 약간은 증오와 광기의 시대일지도)에 사는 우리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제각기 어떤 형태로 가지고 있을까.
사랑 때문에 혼란스러운 사람들, 또는 다른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 사랑하는지 궁금한 이들은 꼭 읽어보길 바란다. 가지각색의 다양한 사랑이 나오므로. 그리고 예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추천한다. 읽다 보면 본인이 알고 있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이때 순간적으로 몰입이 되면서 더욱 재미있는 느낌을 받을 것이라 확신한다.
작가 플로리안 일리스는 이 책에 앞서 『1913년 세기의 여름』을 통해서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 1년 동안의 일을 다루었었다. 순서는 바뀌었지만 그 책도 읽어볼 생각이다. 그전에 『증오의 시대, 광기의 사랑』이라는 완전한 책이 어서 나오길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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