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김명훈님의 서재
  • 야생 조립체에 바치는 찬가
  • 베키 체임버스
  • 13,500원 (10%750)
  • 2024-05-10
  • : 447
https://www.instagram.com/nemo_sparrow
https://m.blog.naver.com/curlyhoney

📗수도승과 로봇 - 베키 체임버스

들판을 지나가는 따뜻한 바람 같은 소설이다.
예상치 못한 일들이 벌어지지만 결국 미소 짓게 되는.

유명한 SF 소설이라 하면 가장 먼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조지 오웰의 ‘1984’가 떠오른다. 영화는 매트릭스. 모두 디스토피아적인 음울하고 축축한 느낌.

『수도승과 로봇』은 재난을 극복하는 생물과 비생물의 공존 이야기, 각자의 세계를 탐험하는 과정을 통해 공존이 가능해진 유토피아적 미래를 담은 베키 체임버스의 솔라 펑크 소설이다.

_
“떠나고 싶다는 충동은 귀뚜라미 소리 때문에 시작됐다.”
서로 간의 사회가 단절된 인간과 로봇의 세계.

수도승 ‘덱스’는 번아웃에 지쳐 도시를 벗어나고 싶은 욕망을 느낀다. 자연에 대한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하고 인간 구역 밖으로 벗어나 다도승이 되는 덱스, 그의 앞에 대뜸 나타난 것은 자유롭고 엉뚱한 질문투성이인 로봇, ‘모스캡.’ 귀여움 속에 진지함이 들어있다.

덱스와 모스캡은 함께하는 여정에서 둘의 대화를 통해 로봇과 인간이라는 간극의 틈을 조금씩 좁혀간다. 특히 인지하는 방식의 이해, 자연과 인간 존재의 사유에 대해 고찰하는 둘의 대화는 무척 인상적이다.

“그런가요? 당신 말대로 당신은 기계니까요.“
”그래서요?“
”그런데 기계는 숫자와 논리 때문에 작동하잖아요.“
”그건 우리가 기능하는 방식이지, 인지하는 방식이 아닙니다.“ p.106

“당신은 물과 유전자로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 그 이상의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 이상이 뭔지를 원재료만 가지고 정의할 수 없습니다.” p.108
_
불교의 교리와 비슷하다고 해야할까. 모든 것은 순환하고 다시 만들어진다고 설명하는 모스캡이 오히려 수도승과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누가 로봇이고 누가 수도승인지 헷갈릴 정도.

세상에 그 무엇도 그렇게 작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른 모든 존재는 망가지고 다른 것으로 만들어집니다. p.134

_
‘로봇은 모든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라는 통념과는 달리 모스캡은 엉성하고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자주 보인다. 진지한 대화 속에서 튀어나오는 모스캡의 엉뚱함과 순수한 질문을 통하여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가볍고 포근하게 풀어냈다. 그리고 이런 순수한 엉뚱함 때문에 모스캡은 차가운 로봇이 아닌, 따뜻하고 귀여운 하나의 인격체로 느껴지게 한다. 많은 독자들은 이런 모스캡의 모습에서 매력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귀여운 모스캡.

그럼, 그건······ 죄송합니다. 셈이 느려서.
덱스가 눈살을 찡그렸다.
”네?“
어떻게 로봇이 셈이 느릴 수가 있지?
”쉿, 곱셈을 하면서 동시에 말할 수는 없습니다.“ p.66

_
“휴식이 필요한 모든 이에게 바친다”
서문에 적힌 이 문장이 상당히 어울리는 책이다.
디스토피아 SF는 피로감을 느껴서 즐겨 읽지 않지만 이런 책이라면 언제든지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한 손에 들어오는 판형이라 휴대성이 좋아서 야외에서 읽기 편하다. 내용 중간에 어색한 조사 표현이 일부 있었고 덱스의 논 바이너리 인칭인 ‘그네’라는 단어는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지만, 그건 작은 부분에 불과해서 크게 티 나지 않는다. 앞으로 덱스와 모스캡이 어떤 탐험을 하며 귀여운 대화를 나눌지 2편이 궁금해진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