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삶은 항상 두 가지 이름을 가진다. 타인이 부르는 이름, 그리고 자신이 부르는 이름.
『치치새가 사는 숲』은 14살의 '나'가 두 번째 이름인 '치치림'을 가지게 된 경위를 설명하는,
성장소설이자 사랑에 대한 소설, 아니 사랑이라는 말이 얼마나 조각난 것인지 보여주는 소설로 읽힌다. 작품 속에서 반복되는 '미래가 오히려 과거의 원인이 된다'는 말은 실은 소설이란 장르가 이야기를 쓰는 가장 평범한 방식이지만, 『치치새가 사는 숲』은 바로 그 가장 기본적인 방법을 서사의 중심으로 가져올 수 있는 능숙한 작가의 작품이다.
아이들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폭력과 불안을 고통스럽도록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던 이야기에서 갑작스럽게 어른들이 개입할 때, 아니 사실 아이의 세계라고 외면하고 방치했던 것들이 그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폭력과 외면의 연쇄들이 직조된 문양임을 보여주는 장면들에서 이 소설은 고통스러운 힘을 얻고, 고통스럽게도 힘이 있다. 그러나 다행히도, 치치림은 자신이 부르는 이름이다. 그는 나쁜 기억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나쁜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니까. 고통스럽겠지만, 그러나 동시에 다행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