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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린님의 서재
  • [전자책] 선량한 차별주의자
  • 김지혜
  • 13,600원 (680)
  • 2019-07-16
  • : 2,360

지금의 시대를 일컫어 흔히 차별과 혐오의 시대라고 말한다. 특정한 그룹이나 인물을 비하하는 표현이 흔해졌고 그만큼 문제의식도 커져가고 있다 여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혐오는 어느시대에나 있었다. 태초부터 정해진 성별과 인종 외에도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하고 멸시하는 일은 과거에도 빈번했다. 지금의 시대가 좀 더 원색적이고 노골적인 것들을 쉽게 접할 수 있기에 더욱 도드라져 보일 뿐이다. 혐오의 표현은 생활 속 여기저기 산재해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스스로 차별주의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책의 제목에서부터 말하는 선량한 차별주의자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저자는 첫장에서부터 굳이 '선량한 차별주의자'라는 단어를 만들어낸 이유를 밝히고 있다. 모두가 쓰니까 대수롭지 않게 사용하는 말 중 일부는 누군가에겐 차별의 뜻을 담은 표현이 된다. 결정장애, 다문화, 급식충 등등. 이런 단어들의 기원을 살펴보면 부정적인 의미가 담겨있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다 하더라도 단어를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겐 차별의 뜻이 전달된다. 이것이 바로 책에서 말하는 '선량한 차별주의자'의 정의다.

내가 처음으로 소수자 그룹에 관해 인식하게 된 것은 초등학생때였다. 그때는 학교 앞 문방구에서 준비물을 사던 시대라 일주일에 몇 번씩 문방구를 들러야했다. 기억하고 있는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준비물을 미리 사두고도 색깔짙은 펜을 들여다보며 이것도 살까말까 고민하고 있는데 뒤쪽에서 한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장애자냐?라는 물음이었다. 그 말은 일종의 유행어었다. 장애자냐는 말을 들은 아이가 아니라고 소리침에도 내가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던 건 그런식으로 친구를 윽박지르는 모습을 꽤 봐왔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자리엔 문방구 사장님이 있었다. 사장님은 아이에게 다가가 아직도 잊을 수 없는 말을 했다. 우리 언니 이름이 장애자인데 그렇게 함부로 말하면 되느냐고. 어른이 그렇게 말했기 때문일까, 기세등등하던 아이는 결국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당시의 나는 무엇이 잘못됐는지는 몰랐지만,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만은 알았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장애'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한번씩 생각나는 에피소드다. 그렇다고 내가 '장애'라는 말을 쓰지 않았냐고 물으면 그렇지는 않았다. 어원은 알고 있으나 의미는 한없이 가벼워졌다고 생각했다. 철저히 비장애인의 시선에 맞춰진 생각이었던 셈이다. 가볍게 쓰는 의미의 결정장애는 편리했고 그 이면에 소외된 사람들을 생각하는 건 불편했다. 생각해보면 차별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냐는 물음에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들춰보면 사람들은 자신이 겪지 않은 문제에서 차별을 느끼기 어려워한다. 교통약자가 되어보지 않고선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며 소수자그룹에 속해보지 않고선 그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사람은 필연적으로 어느 집단에 소속되어 있으며, 소속감을 갖고 그 과정에서 차별이 생겨나기도 한다. 어느 집단이 다수일 때나, 한 집단에 오래 있으며 편견이 공고히 자리잡을 때도 그렇다. 때문에 이상적인 '평등'이란 굉장히 어려운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확고해진다. 어렵기 때문에 정답을 찾기도 난해하다. 책 속에 나오는 차별의 예시들을 보며 그렇다면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하는가? 고민해봤지만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았다. 차별받는 사람이 되지 않고서야 그 차별을 이해할 수 없다니. 불편해질때야 비로소 느끼게 되는 특권은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어렴풋이 이게 잘못된 건가?라는 의문이 떠오를 땐 늘 계기가 있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때였다. 소수자를 대변해 목소리를 높이거나 차별이라고 항의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들을 때면 편협했던 생각이 부끄러워지던 때가 있었다. 책을 읽기 전부터 스스로 차별주의자가 아니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없었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 생각하고 싶은대로 왜곡한 이미지를 그대로 믿거나, 불편하다는 이유로 차별까지는 아니지않나 생각하고, 정당함을 스스로의 기준으로 판단한 적이 있었다.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서도 공감했던 부분들이 많았다. 난민 문제를 겪으며 예맨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말할 때, 여성과 인종에 대한 고정관념을 이야기할 때가 더욱 그랬다. 내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들은 몰랐다고 해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 차별 당하는 사람은 있는데 차별을 한다는 사람은 없다는 말 또한 마찬가지다. 계속해서 생겨나는 차별과 혐오표현만 봐도 차별은 여전히 존재한다. 차별적인 세상에서 수많은 차별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6년전에 쓰여진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일들을 보면 '이런 일이 있었어?'라는 생각보다 '아직도 이러고 있네'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사람간의 차이는 어쩔 수 없다. 메울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한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차별이 있어야 하는가? 프롤로그부터 부끄럽게 했던 책을 보며 수없이 물음을 던져 보았다. 물론 이 책을 통해 차별을 모두 다 알게 되었다 말할 수는 없다. 지금도 여전히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선 보이지 않는 차별이 존재할수도, 내가 이해하기 힘든 차별이 존재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평등을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하는 걸까? 어쩌면 일상의 차별이 무엇인지 인식하는 것부터 시작일 지 모른다. 누군가를 비하하고 조롱하는 농담에 웃지 않는 것만으로 소심한 반대가 가능하다는 저자의 말처럼 작고 소심한 행동일지라도 무언가 필요하다.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았든 차별은 흔하고 일상적으로 존재하며 평등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되지 않기 위해 행동할 이유이며, 바뀌어야 할 이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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