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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린님의 서재
  • 67번째 천산갑
  • 천쓰홍
  • 16,200원 (10%900)
  • 2024-09-05
  • : 3,385

소설은 '페트리쇼르'에서 시작해 '페트리쇼르'로 끝난다. 가뭄을 만난 식물이 분비하는 기름방울이 땅에 떨어져 스며들었다가 비가 오면 뿜어내는 냄새에 빗물이 섞여드는 것을 일컫는 말인 '페트리쇼르'는 주인공 중 하나인 '그'에게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복잡한 감정 또한 불러일으킨다. 반면 '그녀'는 그런 사실을 모른다. 페트리쇼르에 관한 것을 비롯해 그가 무엇을 떠올리는지조차 알 수 없다. 그녀는 잠자는 것조차 연기하며 유쾌하지 못한 결혼생활을 하는 중이다. 한물 간 배우이자 정치인의 트로피 와이프로 살며 그녀는 조금씩 마모되어갔다. 그렇게 살아온 그녀와 그, 두 사람의 공통점은 어렸을 때 광고와 영화를 찍었다는 것과 방황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대개 현실을 알기 전의 세상이 아름다운 것처럼 두 사람의 세상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매트리스 위에서 안온한 날과, 평화를 연기하며 매트리스 위에서 함께 잠들었다. 매트리스 광고의 장면을 촬영하는 건 어른의 이해관계 때문이었으나 매트리스 위 두 아이의 세상은 많이 달랐다. 그저 잠을 잘 수 있어서 좋았고, 가만히 있어도 편안하게 있을 수 있었으며 부모에게서 내몰린 묘한 유대감까지 있었다. 하지만 곧 매트리스 상품에 관한 불만을 아이들에게 화풀이하듯 풀어내고, 여자와 남자가 하필이면 매트리스 위에서 손을 잡고 자는 장면을 촬영했다는 것에 음란하다며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두 아이는 또다시 냉혹한 현실로 내던져진다.


소설을 보고 있자면 비가 내리는 날, 막아줄 것 하나 없이 어둑한 거리를 걷는 사람의 모습이 절로 떠올랐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 약한 온기가 겨우 닿을 것 같은 두 사람 사이에서 시선이 번갈아가며 엇갈린다. 솔직히 서술적인 측면에서 혼란스러웠다. 그와 그녀, 그녀와 그는 매번 뒤섞이고 꿈 속에서 헤매듯 몽롱한 분위기마저 풍긴다. 게이가 된 그는 스쳐지나가는 사람과도 성관계를 하며 과거의 인물을 그리워하고, 도통 현실세계에 발붙이고 싶지 않아하는 그녀는 꼭 찾아야하는 아들이 있었다. 과거 촬영한 영화가 다시 상영할 기회를 얻게 되며 영화제에 초청된 두 사람은 영화제를 계기로 다시 만나게 된다.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아했던 아이에서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어른의 모습으로 만난 것이다. 이후 그동안 잠을 잘 수 없었던 그녀는 그의 곁에서 편안히 잠들 수 있게 되고, 그는 그녀의 곁에서 불안함을 잠재워간다.


소설 속 천산갑이라는 동물은 지극히 예민해 작은 충격에도 쉽게 죽어버린다. 몸을 둥글게 말고 마치 부끄러워 하는듯 그대로 생을 달리한다. 하지만 이런 천산갑은 어린 그와 그녀에게 마음을 열어준다. 마치 동류라는 듯이, 서로를 공격하지 않고 최대한 함께 살아내는 방식으로 자리를 내어줬던 것이다. 이런 두 아이의 모습을 남기고자 했던 것이 바로 영화였다. 어른인 감독은 영화라는 방식을 통해 기묘함을 기록하고 천산갑은 그로인해 죽어갔다. 두 아이가 천산갑의 시체더미에서 무엇을 보았던 걸까. 천산갑의 품 안에서 편히 쉴 수 있었던 두 사람은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무해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최대한 몸을 웅크리고 바깥과의 접촉에서 자신을 지키듯이 말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삶에서 천산갑은 떠나가 버렸다.


어른이 된 여자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남자는 일평생을 방황한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찾아내며 살기보다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어서하게 된 선택이었다. 억압된 자아와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다. 때문에 소설은 두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니게 된다. 성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탄압당한 그녀의 아들과 아들을 위해 낙태되어야했던 여아들, 트로피로 살아야했던 그녀 자신, 여자라서 겪어야했던 위협 모두 그녀의 게이친구 즉 게이미와 연결되며 기묘한 유대감을 형성한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계속 누군가의 이해를 바라기보다 외로움과의 싸움을 하며 살아가야할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로 보자면 마지막에서야 되찾은 그녀와 그의 이름은 좀 더 단단한 결심같아 보이기도 한다. 제목의 '67번째 천산갑'이라는 단어 또한 마찬가지다. 내내 웅크리고 살아갔던 두 사람이 낭트로, 덮어뒀던 과거를 뒤로하고 앞으로 향해가는 일련의 과정이 거대한 천산갑 아래에서 웅크리고 있던 두 사람이 서서히 몸을 일으키는 걸 의미하는 것 같아 인상깊었다. 그러니 빗속에서 맡았던 페트리쇼르는 이제 혼자가 아닌 두 사람이 같이 공유한 의지가 되는 셈이다. 내내 두 사람이 만나왔던 수많은 천산갑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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