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주인공의 얼굴이 판다로 변해버렸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피곤에 찌든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갑자기 눈 밑 다크서클이 진해지고 머리에 털이 북실북실 나기 전까지는. 수상한 징조가 보일 때 인스타로 왔던 DM은 그런 주인공의 변화 상태를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주인공은 인스타 DM을 통해 메시지를 보내온 여자와 약속을 잡고 묘한 분위기의 여자를 만나 편의점으로 향한다. 자신을 '진'이라고 소개하는 여자를 따라 편의점 한 구석의 캐비닛에 몸을 구겨넣고 다시 밖으로 나오자 세상이 좀 많이 달라져 있었다. 동물의 얼굴로 변했다가 다시 돌아간 사람들, 동물의 얼굴 그대로를 지닌 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세계. 그 곳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얼굴을 원래대로 돌려줄 수 있다는 진의 '사장님'을 만난다. 사장님이 주인공의 얼굴을 돌려준다며 제시한 조건은 간단한 의뢰 3가지. 주인공은 그 조건을 수락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일상탈출 판타지라고 해서 무슨 소리인가했더니 그냥 차원이동이라고 보면 편할 것 같다. 이쪽 세계와 저쪽 세계를 오가는 캐비닛을 통해 주인공이 이동한 뒤 펼치는 모험은 기묘하면서도 어딘지 재밌었다. 당사자라면 위험천만한 일이 되겠으나 소설이니까 가볍게 읽기엔 좋았다. 소설이 1인칭의 시점이라 주인공의 이름은 끝까지 알 수 없지만 주인공을 도와주는 인물들에겐 '판다 씨'라고 불린다. 이 판다의 얼굴이 큰 사건을 부른다는 걸 그 때는 모르고, 주인공은 판다의 얼굴을 한 채 분명 소소한 의뢰를 들어줄 예정이었다.
많지 않은 분량이라 금방 읽을 수 있었던 소설이기도 하다. 소설을 읽으면서 왜 사람이 동물의 얼굴로 변하는 걸까?라는 부분이 제일 궁금했는데 그 부분은 소설에서 명확히 나오지 않는다. 그저 일상에 벽같은 것으로 다가와 인생엔 다른 길도 있다는 걸 알려주는 게 아닐까라는 사장님의 말만 있을 뿐이다. 그런 부분을 보면 묘하게 납득이 되는 것 같기도, 좀 더 재밌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었던 것 같다. 동물로 변한 뒤 개인별로 가지게 되는 다른 능력만 봐도 말이다. 그런 부분을 보면 결말이 아쉬웠지만 어쨌든 생각보다 판타지의 느낌이 강해서인지 재밌게 볼 수 있었던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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